필자는 1992년 12월 18일 러시아공화국을 방문하였다. 목적은 러시아지역의 한인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및 자료 수집을 위한 것이었다. 국가보훈처 이선우 단장을 필두로 하여 현동준, 정하철, 김정복 사무관 등이 팀을 이루어 진행한 여행이었다. 우리 일행은 일차로 18일부터 23일까지 모스끄바와 뻬쩨르부르크에서 자료수집을 마치고, 23일 오후 블라지보스또크로 가기 위하여 모스끄바에 도착하였다. 모스끄바에는 군용비행장 1곳을 포함하여 모두 6곳의 비행장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중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 쪽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뜨는 도모제도와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러시아 공화국이 과연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8시경 우리 일행은 지난 시절 우리민족의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블라지보스또크을 찾아간다는 설레임을 누르며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설레임은 잠시뿐 예고되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블라지보스또크에서 비행기가 오지 않아 1주일 동안 블라지보스또크행 비행기가 없다는 소식이었다. 일설에는 그곳에 눈이 많이 와서, 또 일설에는 기름이 없어서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낮선 이국땅에 선 우리를 답답하게 했다.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긴 지난 1월에도 뻬쩨르부르크공항에서 11시간이나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비행기는 뜨지 않았다. 계약 당시의 기름값과 현재의 기름값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현재의 오른 기름값을 기준으로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탑승이 가능하다는 러시아 공화국 항공사측의 답변이었다. 한국 사람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했다.
우리가 블라지보스또크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25일이었다. 공항에는 거의 눈이 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로 보아 비행기 결항 이유는 기름 때문인 듯했다. 그렇다고 하여 기름이 부족하여 그런 것은 아닌듯 했다. 러시아 공화국은 세계에서도 몇번째 가는 산유국이 아니던가. 다만 소련 공산 정부가 무너진 이후 러시아 공화국은 각 공항마다 독립채산제로 운영한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연초에 책정한 일반 예산과는 달리 물가가 연초보다 두배나 올랐고,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납득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1월에는 1$에 200루블이었으나 현재는 400루블이 공식 환율로 계산되는 것이 러시아의 오늘의 경제 사정이다. 그런 까닭에 블라지보스또크 공항측의 입장에서는 기름값이 없어 기름을 구입할 수 없었을 법도 했다.
아무튼 공항 대합실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한국에서 경험하는 공항은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곳 공항은 우리의 일반 시외버스터미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비판의 눈으로 보면 지저분하고,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비행기가 대중 교통수단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나 할까. 비행기가 1주일 동안이나 이륙하지 않았으니 공항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고 분위기 또한 술렁거렸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는 그런 소란스러움과는 자못 다른 느낌을 주었다.
결국 비행기가 뜨지 않아 우리 일행은 주변의 여관에서 예정되지 않은 하룻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묶은 여관은 대부분 모스끄바 이외의 지역에서 모스끄바로 농업기술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숙박하는 곳이었다. 호텔은 예약이 되지 않아 투숙할 수 없었다. 그 여관에서는 외국인을 받은 적이 없었던 듯 우리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관은 10층 가까이 되어 보이는 큰 규모였으나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구식 건물이었다. 우리는 5층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침대가 다섯개, 화장실, 목욕탕 등이 있었다. 방은 두개였다. 방하나에는 침실이 2개, 또 다른 방에는 세개였다. 방의 내부는 비교적 단정하고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의 안내자인 문와짐(재소한인, 37세)에 따르면 이 여관은 원칙적으로 규칙상 정해진 사람 외에는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그 사유서를 자기가 써야 한다고 하였다.
24일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코스모스 호텔로 갔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곧장 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경이었다. 우선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인투리스트 대합실로 갔다. 그 곳에 몇몇 외국인들이 보였다. 그 중 중국인으로 보이는 세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들은 상인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자기들은 하바로브스크로 가고자 하는데 이미 3일 동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ぢ당신들은 어디로 가는가っ 라고 물었다. 우리는 블라지보스또크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도 블라지보스또크으로 가고자 하나 19일부터 비행기가 없어서 우선 하바로브스크로 갔다가 그곳에서 비행기나 기차를 이용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우리들도 하바로브스크로 가야할 것 같았다. 우리는 러시아공화국에서 외국인 여행을 전담하는 인투리스트에 사정을 해서 일단, 25일 새벽 2시 비행기로 하바로브스크로 떠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도착 시간은 25일 오후 4시, 우리는 27일 출발하는 서울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암담했다. 왜냐하면 25일 오후 4시에 도착할 경우 하바로브스크에서 블라지보스또크로 가는 비행기가 없으면 기차로 그곳까지 가야했는데, 하바로브스크에서 블라지보스또크까지는 14시간 정도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사실상 우리 일행은 블라지보스또크은 거의 답사하지도 못하고 하바로브스크에 있다가 27일 서울로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난감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설상 가상으로 하바로브스크 발 4시 비행기가 연기되어 겨우 오후 10시에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점심도 굶고 있다가 오후 2시경 이선우 단장과 문와짐이 비행장 담당 책임자를 만나 막후 교섭을 벌인 결과 겨우 10시발 하바로브스크행을 타기로 되었다.
우리는 점심 식사도 굶은 상태였으나 다소간의 호기심이 발동한터라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모스끄바 시내에 위치한 평양식당을 찾았다. 평양식당은 이북에서 직영하는 한식 음식점이었다. 5시로 식사 시간을 예약하였다. 식당에 도착한 것은 4시 30분이었다. 약간 일찍 도착한 관계로 식사가 준비되지 않아 우리 일행은 간단한 쇼핑에 나섰다. 쇼핑 장소는 한국의 토큰 판매소 정도 크기의 판매대였으며, 물건 등의 도난 방지를 위하여 철저히 보안 장치를 하였다. 그곳에는 주로 미제 담배, 옷, 전자제품, 트럼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30분간 쇼핑을 한 후에 평양식당으로 갔다. 지배인은 평양 사투리를 쓰고 있는 이북 사람들이었으며, 웨이터도 2명은 평양, 2명은 러시아인이었다. 러시아인들은 불친절하였으나 이북 사람들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다만 음식값이 지나치게 비쌌고, 접대원 가운데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음식은 좋았으며, 우리는 평양냉면, 전골, 밥, 숭늉 등을 맛있게 먹었다. 평양산 ぢ워드카っ도 마셨다. 이 워드카는 한국의 소주보다는 독하나 소련의 보드카보다는 약하였다. 마시기에 부담이 없었다. 식당은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일행은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연일 흑빵과 치이즈, 연어, 순대 등 러시아 식으로만 먹다가 한식을 먹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모두 다 대단히 기뻐하였다. 식사후 우리 일행은 비행기 시간이 좀 남아 민영백화점인 굼 백화점에 갔다. 물건들이 대부분 조잡하고 수요도 별로 많지 않았다.
곧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10시발 하바로브스크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 행운의 소식이 날아왔다. 11시발 블라지보스또크행 비행기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비행기가 뜨지 않자 승객들의 항의 소동이 있어 모스끄바 비행 당국에서 특별기를 블라지보스또크으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행장 담당 책임자의 특별한 배려로 11시 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큰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하루나마 블라지보스또크을 탐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블라지보스또크는 러시아 공화국 극동지방 남동쪽 끝에 있는 연해주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1989년 현재 64만 8천명에 이르고 있다. 동해에 면해 있으며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반도의 남단, 금각만 연안에 발전한 도시로서 태평양 방면에서의 이 나라 굴지의 항만도시이다. 항구는 11월부터 3월까지 결빙하지만 쇄빙선을 이용하면 겨울에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항구이다. 도시의 이름은 ぢ동방(워스또크)을 정복하자(블라지)っ라는 러시아어에서 유래 한다. 중국명은 하이첸웨이이다. 1860년에 러시아 해군기지로 개항하여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극동정책이 활발해짐에 따라 경제적, 군사적으로 그 중요성이 높아진 곳이었다. 1903년 시베리아 철도의 개통으로 러시아 중심부와 육로로 직결되면서 그 철도의 종점으로서 국제적 의의도 높아졌다. 혁명운동사에서도 1905-1907년 제1차 러시아 혁명기에 군대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1917년 10월 혁명때에는 재빨리 소비에뜨 정권을 수립하는 등 시베리아, 극동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19세기 말에 동방연구소가 개설되어 문화적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비행기는 11시 출발 예정이었으나 25일 새벽 1시 10분이 되어서야 출발하였다. 우리는 25일 3시 40분 블라지보스또크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한국 독립운동의 최대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 마음이 설레였다. 그리고 유적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모두들 긴장하였다.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우리는 마중 나올 사람이 오지 않아 한동안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 덕분에 공항 주변의 이모 저모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공항 대합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 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스끄바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들은 기름이 없어 뜰 수 없었다. 비행장 앞에는 장사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보였다. 대개 펩시콜라, 보드카, 순대 등을 놓고 팔았다. 이곳에서도 물건들이 조잡하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모스끄바, 뻬쩨르부르크보다 못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수준 역시 어려워 보였으며, 눈초리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였다. 공항 앞에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많은 택시들이 보였다. 택시의 대부분은 중국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제였다. 이곳에도 일본이 많이 진출해 있구나 하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항 옆에는 일본어로 씌여진 자동차들도 있었는데 이 자동차들은 블라지보스또크 도로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일본 회사의 것들이었다.
블라지보스또크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 바라본 정경은 한국의 보통 도시를 연상하게 하였다. 들과 언덕, 주변의 산들이 교차하였다. 그리고 오밀조밀한 도로와 그 도로를 통행하는 많은 차량들과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시베리아 벌판을 연상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현실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산천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공항에서 우리의 숙소인 블라지보스또크 호텔까지는 32Km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차로 달리는 동안 날은 벌써 저물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블라지보스또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한 언덕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는 항구와 시가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특히 금각만(ܗܾܻܾ݂ܾܹ ܠܾܳ)에 정박해 있는 배들의 모습은 바다와 어우러져 더욱 빛나 보였다. 그 건너편은 출끼나 지역이라고 하였다.
블라지보스또크 호텔은 10층 정도의 건물이었으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검소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TV는 한 방송만이 나왔다. 호텔 옆에는 극동대학이 있었으며, 이곳의 동양학부에는 한국어과가 있다. 블라지보스또크는 일찍부터 한국에 대하여 연구하여 온 대표적 지역이다. 이미 1899년 이곳에 동아시아 나라들과 민족들을 연구하기 위한 동방학원이 세워졌고, 한국학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1890년 당시의 정치 상황이 제정러시아에 유리했기에 많은 러시아 학자, 군인 , 여행가 등이 육로로 서울 등을 다녀가면서, 서적 등 자료를 수집해 갔다. 이 동양학원이 후에 극동대학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이외에도 러시아에는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이 몇개 더 있다. 뻬쩨르부르크대학, 모스끄바대학, 모스끄바 국제관계대학 등이 그것이다. 그 중 뻬쩨르부르크대학 동양학부 한국어과가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오늘날은 몇몇 사립대학에도 한국어과가 신설되었거나 신설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들 대학과의 자료 교환 등이 기대된다.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한 한국인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자신을 고려화학의 백과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곳에는 벌써 아홉번째 오며, 이번에는 온지 1주일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도둑이 많으며 달러 소지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밤에는 혼자 다녀서는 안되며 소련인들 조차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불과 며칠전에는 하바로브스크에서 한국인 실업가가 러시아인에게 돈과 목숨까지 빼앗긴 불상사가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긴장된 분위기였다. 그는 블라지보스또크에는 큰 선단이 있는데, 러시아 배들의 도색을 위하여 이곳에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산, 블라지보스또크, 사할린을 연결하는 전세기가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는 매주 화요일 서울서 하바로브스크로 오는 비행기만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사꾸라라고 하는 이 호텔의 지하에 있는 일본 식당에서 저녁을 하였다. 러시아 식당은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이라 목재 회사에서 빌려 파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티장의 분위기는 대단히 정겨워 보였다. 한가지 두드러진 현상은 러시아 어디에서나 젊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모두 미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현재 러시아의 유행이 아닌가 싶었다. 모스끄바에서 블라지보스또크로 오는 비행기에서 본 한 러시아 처녀는 앞니를 금으로 하였다. 한국 사람의 경우 표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연 치아와 잘 구별되지 않는 인공치아를 사용한다. 그런데 부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그녀는 황금 이를 하였던 것이다. 기이하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안내자인 문와짐 선생은 얼마전 까지만 해도 러시아에서 황금이빨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사꾸라에는 일본 노래들이 흘러 나왔으며, 기모노를 입은 러시아 여인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뚱뚱한 러시아 여인들이 입고 있는 기모노에는 왠지 모르는 어색함이 배어 있었다. 식당은 일본식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우리와 동행한 백과장은 이 식당은 달러만 받는 비싼 식당이며, 이 식당의 자재는 모두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하였다. 일본 사람들은 식당 하나를 만드는데 이처럼 철저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번 그들의 주도면밀함에 놀랐다. 1918년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이 떠올랐다. 오늘날 일본은 다시 이곳으로 출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곳 블라지보스또크에는 사꾸라 외에도 長崎라고 하는 일본 식당이 레닌거리에 또 하나 있었다. 그 다음날 점심은 그곳에서 하였는데 그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사꾸라의 지배인은 한국인 여자였다. 그의 남편은 이곳 재소한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하였다. 현재는 한국에 가고 없다고 한다. 만나지 못하여 못내 섭섭하였다. 이곳에는 한국인이 약 5,000명 가량 거주한다고 한다. 저녁 식사는 풍성하였으며, 러시아식 일본 식사였다.
26일 아침 8시 우리 일행은 우스리스크(ܣܸܹ݁݁݃݀݁ܺ)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의 안내자는 하바로브스크에 거주하는 송희연선생(1920년생, 전 김일성대 로문과 교수, 현 하바로브스크 철도대학 교수)이었다. 그는 17세 때인 1937년 강제 이주 전까지 블라지보스또크신한촌에 거주하던 까닭에 이곳의 지리에 매우 밝았다. 그는 블라지보스또크에서 정상진(소련파, 전 북한 문화부차관) 등과 8호중학을 다녔으며, 1947년부터 10년 동안은 사할린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62년까지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로어 회화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후 소련으로 다시 돌이와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8시 송옹과 함께 우리 일행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거리를 헤치며 우스리스크로 향하였다. 이곳은 1935년까지는 니꼴스크-우스리스크로, 그리고 1935년부터 1957년까지는 보로시로브로, 그리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는 우스리스크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블라지보스또크에서 북쪽으로 약 112Km 떨어졌으며, 과거 발해의 5경 12부 중의 한부가 이곳에 있었다. 발해가 멸망한 직후에는 중국의 영토였으나 1860년의 북경조약 체결의 결과로 러시아 영토가 되면서 점차 한국인의 이주가 시작된 곳이다. 1870년 地新墟로 이주해 온 조선인들 가운데 96명이 청나라 배 3척을 나누어 타고 秋豊으로 향하다가 블라지보스또크에 이르러 암초에 부딪힌 기록이 있다. 이 때 96명 가운데 22명이 사망하고 나머지 생존자들은 하루에 10여 리를 걸어 8일만에 이곳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 러시아 병사들이 지냈던 토굴에서 거주하며 이 지역의 개척을 시작하는 것으로 정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 후 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식민지하 항일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언덕과 산들이 있어 한국의 지형을 연상케 하였으나 블라지보스또크보다 훨씬 추운 기후 탓에 몸을 한컷 움추릴 수 밖에 없었다. 1시간 반 남짓 달려 우리 일행은 우스리스크에 도착하였다. 송옹의 안내를 받아 우선 우리는 조선사범전문학교를 방문하였다. 이 학교는 1917년 고려족 중앙총회에서 4만 루블이라는 거금을 들여 지은 학교였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7년제 학교의 교사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학교의 교사로서는 여러 인물이 거쳐갔지만 잘 알려진 인물로는 일제하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기구의 하나였던 카프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비운의 망명작가 포석 조명희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졸업생으로는 오순희, 朴正愛, 주송학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사범전문학교는 치체리나(ܧܸܸ݇ܵ݀ܽܰ) 거리 54번지에 위치한 2층 건물이었다. 현재는 우스리스크 사범대학 물리수학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건물의 본관과 좌측 건물만이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것들은 후대에 증축한 것으로 보였다. 학교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학생은 아닌 듯한 러시아 여인들이 우리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우리 일행들을 제지하였다. 이에 대해 송옹은 이 학교는 원래 한국인들이 세운 학교인데 당신들(러시아인)이 무슨 권리로 이런 무례한 짓들을 하느냐고 항의하였다. 그 여인들은 이상한 듯이 송옹을 바라보았으며,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날 저녁 우리 일행이 서둘러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때, 송옹은 러시아에서 싸움을 하든, 이야기를 하든 러시아 사람에게 꼭 이겨야 한다는 말로 동포애의 일단을 피력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이때 필자는 혹시 그의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그 여인들(러시아인)에게 그러한 반발적 행동을 유발케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학교에는 현재 한국에서 교환 교수로 몇분이 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강의 중이었으므로 만날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아침 식사를 거르고 서둘러 출발하였으므로 요기할 곳을 찾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당이 10시나 11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이곳에 사시는 田龍俊(77세 1916년생)선생의 댁을 찾았다. 두 마리의 개가 반갑게 짖어 댔다. 씨밭이용 옥수수 들이 처마밑에 매달려 있는 풍경에서 우리는 쉽게 한국인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전옹 부부는 우리를 매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선생은 원래 우스리스크 근교에 살았으나 1937년 강제이주 당시 중앙아시아로 갔다가 몸이 아파 1959년에 이곳으로 재이주하였다고 한다. 그는 슬하에 아들 4명, 딸 1명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로는 물가가 너무 비싸 참으로 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였다. 전선생 댁에서 우리 일행은 차와 빵 그리고 김치, 감자 등으로 아침 식사를 잘 대접 받았다.
조금 있으니까 중국 吉林省 延邊에서 왔다는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이곳에 장사하러 왔다고 한다. 송옹은 이곳 우스리스크에서 얼마정도 국경 지대로 들어가면 상촌이란 곳이 있는데, 주로 그곳에서 중국인과 러시아인 사이에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중국인들이 이곳 러시아 국경지대에 와서 장사를 해서 10년 먹을 정도의 돈을 벌어 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까지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먹고 살만큼은 장사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이곳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러시아 국경을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러시아로 오는데 자유롭다고 하였다. 정부에서도 쉽게 허가증을 내어 준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는 중국인들은 장사를 위하여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 때문에 러시아 국경 지역의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들은 기차표를 사기 위하여 많은 돈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러시아인들은 최근 경제가 어려운 틈을 타 이들 중국인으로부터 물건을 빼앗기도 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최근 러시아 지역은 물가가 너무 폭등하여 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전옹은 우리 일행에게 하소연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오히려 스탈린 시대가 살기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블라지보스또크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관광버스를 러시아 무장 강도단이 세워 모든 여행객의 소지품을 강탈한 사건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극동 지역에 오니 러시아 경제의 어려움을 피부로 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전옹의 댁을 뒤로 하고 우스리스크 역으로 향하였다. 이 역은 블라지보스또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철도가 이 도시에서 하바로브스크 방향으로 가는 철도와 중국의 하얼빈으로 가는 철도와의 교차가 이루어지는 철도 교통의 요지였다. 역사는 3층 건물이었으며 역 광장에는 아직 레닌의 동상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개혁과 개방의 케치프레이드로 물결치던 때 모스끄바 뉴스속보를 연상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다소 낮선 감마저 들었다. 1937년 강제 이주 당시에 한국인들이 이 광장에 모여 이주당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필자의 가슴엔 회한의 바람이 스쳤다. 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핏줄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답답했다.
우스리스크는 또한 의병운동을 활발히 지원했던 崔在亨 등이 총살 당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20년 4월 4일 밤부터 5일 새벽에 연해주 지방과 연흑룡강 지방에 주둔한 일본군이 예기치 않게 극동공화국을 기습했다. 일본인들은 24시간 동안 블라지보스또크, 니꼴스크 우스리스크, 스빠스크(ܡܿܰ݁݁ܺ), 하바로브스크, 쉬꼬또보(ܨܾ݂ܾܾܺܲ), 뽀시에트(ܟܾ݂݁ܵ), 기타 연해주 지방 지역에서 군사행동을 개시했는데, 이것은 사전에 작성된 계획에 따라 수행된 것이었다. 이때에 니꼴스크 우스리스크에서 연해주 지방과 연흑룡강 지방 노동자들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 도시를 점령하자 이 도시에 참석한 많은 대표위원들을 체포 살해했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한인무장 유격대 대표위원들인 최재형, 金利稷, 嚴周弼, 카피톤 黃, 이경수 등이 있었다. 그 다음날 일본인들은 그들을 모두 총살시켰다. 우리 일행은 이들의 묘소를 찾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묘소를 아는 이들은 없었다.
우스리스크에서 30Km 떨어진 근교 육성촌에는 재소한인의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조명희가 망명직후 처음으로 이곳에 이주하여 강의를 했던 학교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조명희는 1928년 여름 국내에서 연해주 신한촌으로 망명한 이후 1929년 가을 우스리스크 근교 한인 마을인 육성촌으로 거처를 옮기고 육성소학교와 육성농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었다. 아쉬었지만 일정상 그곳은 찾아보지 못하고 블라지보스또크로 향하였다.
블라지보스또크으로 향하는 가운데 라즈돌노예(ܠܷܴܾܻܾܰܽܵ)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15Km나 옛 일본군 병영이 늘어서 있었다.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2층 건물이었다. 송옹은 이 지역의 좌측 산 위에서 의병들이 내려와 일본군 병영을 습격하기도 하였다는 목격자의 말을 여러번 들었다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필자는 이들 중의 일부는 김희천, 崔虎林 등의 부대가 아닐까 추측했다. 그들은 시두고우, 산두고우, 에르투고우, 암밤비촌들의 한인 농민들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한인무장 유격대를 조직하는 것으로 항일부대의 전초를 마련했었다. 초기에는 60명 밖에 안되는 소규모 조직에다 40정의 총으로 무장했으나, 1920년 3월에는 500명이 되었고, 부대 부속 공산주의 세포도 있었다. 이 병영들은 1918년 4월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여 만든 것으로 그들이 오랫동안 이곳을 지배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때 출병한 일본군은 1918년 8월에 본격적인 군사간섭을 시작하여 1922년 10월에 철병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1920년, 일본이 보유한 21개 보병 사단 중 11개 사단 17만 5천명이 극동에 주둔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블라지보스또크쪽으로 가니 끄라스끼노(ܚܸܾ݀ܰ݁ܺܽ 연추)로 가는 길이 나타났다. 그곳의 다리를 건너 73Km만 가면 끄라스끼노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다리 건너 방향으로 높은 산들이 보였다. 저 산 너머 끄라스끼노로 계속가면 북한 땅이 나온다고 한다. 우리 동포들이 북한의 두만강을 건너 핫산(݅ܰ݁ܰܽ)으로, 그리고 끄라스끼노를 거쳐 한참이나 내륙으로 들어 왔구나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송옹에 따르면 끄라스끼노 지역은 산도 많고 먹고 살기 어려웠던 까닭에 많은 조선인들이 이 길을 따라 극동 지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군 역시 이 길을 따라 이동하였다고 한다. 다리 밑으로 마침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하바로브스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블라지보스또크 방향으로 얼마쯤 가니 아르쫌(ܐ݂݀ݑܼ)이란 곳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산맥을 넘으면 그곳이 水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르쫌 지역에는 석탄이 많이 생산된다고 하며, 과거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석탄을 캐기도 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다시 블라지보스또크 시내로 들어왔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교통량이 대단하였다. 서울의 여느 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1920년 4월 일본군이 신한촌을 습격했던 병영이 있었던 뻬르와야 레치까(ܟܵ݀ܲܰݏ ܠܵ݇ܺܰ 첫번째 작은 강)라는 곳을 바라 보았다. 일본군들은 ぢ혁명군 무장해제전っ이라는 미명하에 러시아 혁명 지도부뿐만이 아니라 한국독립운동도 노골적으로 탄압하였다. 그 옆에는 이동휘선생이 묻혔던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동휘선생은 1935년 1월 31일 오후 7시 신한촌 자택에서 사망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1935년 2월 4일 블라지보스또크 항의 で뻬르와야 레치까と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는 것이다.
그⧚공동묘지는 신한촌을 우러러 보고 있는 자리였다. 그곳은 현재는 모르고도로크(ܜܾܾܾܴܾ݀ܳ݀ܺ 바다를 낀 소 구역)이라는 지역으로 불리며 공동묘지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아울러 일본군 병영 앞쪽 신한촌의 조선 여인들이 빨래하곤 했다는 조그마한 내를 찾아 보았다. 현재는 강은 없어지고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신한촌의 하바로브스크 거리로 들어섰다. 이곳 신한촌에는 과거 우리 조선인들만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곳은 높은 산이었다고 한다. 높은 산 위에 모여 사는 모습을 본 춘원 이광수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하였다. ぢ해삼위 시가를 다 지나고 공동묘지도 지나서 바윗등에 굴붙듯이 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나타났다. 이것이 신한촌이다っ. 신한촌은 과거 동서로 약 6정, 남북으로 약 7정의 면적으로 아무르만에 연한 산의 경사면에 위치하여 그곳에서 아무르만을 내려다 보면 1백 여 척이나 되는 낭떠러지 밑에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절경지였다. 그리고 겨울이면 결빙하여 西南行 人馬는 해빙판 위를 걸어서 훈춘, 왕청, 화룡 등 북간도를 오가던 곳이다. 新韓村은 新開拓里와 石幕里로 구성되어 있었다. 러시아풍의 나무로 건축한 작은 집이 보통이었다. 집마다 2, 3개의 한국식 온돌방이 있고, 한 집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살아 많으면 20여 명이 동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한촌은 러시아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총본산이기도 하였다. 권업회(1911.5-1914.9), 전로한족중앙총회(1917.5), 노인단(1919), 한인사회당 대표대회(1919.4) 등이 이곳에서 조직, 또는 개최되었던 것이다.
하바로브스크 거리를 따라 우리 일행은 신한촌이 있었던 산등성이를 올라갔다. 지금은 당시의 모습을 전혀 살필 수 없었다. 아파트들과 신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 까닭에 산의 높이도 많이 낮아졌다. 몇십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우리의 실망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고자 많은 애를 썼으나 모두 허사였다. 다만 송옹의 안내에 따라 이곳이었겠구나 하는 정도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우리 일행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송희연 선생이 살았다는 하바로브스크 35번지쪽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하바로브스크 거리 21번지에 있었다는 이동휘 선생의 집에도 가 보았다. 그곳은 현재 4층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역시 이동휘 선생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건너편에는 스탈린구락부가 있었다고 한다. 3·1운동 기념일, 5월 1일 노동절 등에 한인 지도자들이 만나 독립운동을 논의하였던 곳이다. 이곳 역시 흔적 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무로 된 3층 건물의 장로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후에 4년제 소학교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당시의 교육제도를 보면 4년제, 7년제, 10년제등의 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4년제는 소학교이고, 7년제는 초중학교, 10년제는 중학교였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할 자격이 생겼다.
거기서 50미터 정도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약간의 나무가 있는 숲이 나타났다. 이곳이 과거 길 양편에 기둥을 세우고 위에는 솔가지로 장식된 독립문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의 모습은 1932년에 이곳을 방문했다는 한 일본인이 남겨놓은 기록에 의하면 이렇다.
블라지보스또크의 북쪽 해안을 내려다보는 언덕위에 자리잡은 신한촌을 방문하였다. 그들의 집들은 온돌을 놓고 있어 한국의 연장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마을에 들리려면 울퉁불퉁한 돌들이 깔린 고개길을 올라가야 했다. 그 고개를 오르면 이 마을 입구에 독립기념일인 3· 1 문은 古色을 지닌 채로 서 있다. 이 문을 지나서 메인 스트리트로 바로 걸어가면 우측에 소학교가 있다. 맞은 편 洋館은 지금 구매조합의 사무실로 쓰여지고 있으나 재작년까지 한국인 소학교였다. 이것이 바로 1919년의 간섭(서백리아출병) 당시에 독립운동을 모의한 곳이라 하여 일본군인들이 불살라 버린 것을 재건축한 것이라고 한다(永丘智太郞, <<극동의 계획과 민족>>, 1938, 페이지 249)
그곳에서 아무르만 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서울거리 A2라는 주소판이 붙어 있는 한 집이 보였다. 바로 아래는 기차길이었고 그 옆은 아무르만이었다. 서울 거리는 과거 신한촌에서 아무르만으로 내려가는 2개의 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신한촌에는 신한촌을 가로 질러 5개의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르강쪽을 기준으로 하여 체레바노거리, 멜리꼬거리, 하바로브거리, 아무르거리, 스보로거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하바로브거리와 서울 거리가 교차하는 곳이 신한촌의 중심지역이라고 한다. 바로 이동휘선생의 집과 스탈린구락부 등이 있었던 지점이 이곳에 해당되었다.
한편 신한촌의 가운데에는 넓은 터를 닦아 한민학교를 세웠다고 하는데 그 위치는 현재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 학교는 교사의 정문 현관과 교실에 태극 문양을 새겨 넣었으며, 학생 수는 2백 40명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권업신문사의 위치도 찾을 길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하바로브거리를 따라 계속 산언덕을 내려왔다. 그리고 大洋거리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곳은 산을 모두 내려와 평지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4거리였다. 이곳이 신개척리의 입구였다. 여기에 과거 몇개의 조선인 집이 있었으며,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한국인 집들이 점차 신한촌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지금은 바냐라는 이름을 가진 목욕탕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소는 깜사몰거리 13번지였다. 그리고 목욕탕을 중심으로 대각선 방향의 4거리에는 당시 한국인들이 이용하던 상점이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는 빈병을 받는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목욕탕의 건너편에는 당시 러시아인이 살았다는 2층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풍습을 전해주고 있다. 아울러 건너편은 당시 블라지보스또크 지역의 변소를 치는 중국인의 집단 거주지였다고한다. 보통 분뇨 운반용 달구지가 200대씩 밖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일행은 대양거리를 따라 금각만과 마주하는 광장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조금 가다보니 우측에 한국인들이 이주하여 세번째 거주하였다는 세위웨 마을의 터가 있었다. 지금은 화력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세위웨 마을이 있는 기차역과 블라지보스또크 역에서 1937년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 이주 당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대양거리를 따라 광장 쪽으로 계속 향하였다. 레닌거리와 만나는 지점에 큰 광장이 나타났다. 지금은 공원으로 쓰이고 있는 이 광장에 1937년 조선인들을 집합시켜 열차에 태웠다고 한다. 1937년 10월 4, 5, 7, 9, 11, 13일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이주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대양거리에서 광장 못 미쳐 우측에 일본총영사관 건물이 남아 있었다. 주소는 대양거리 20번지였다. 2층 석조건물로 되어 있었다. 건물에 국화 모양이 새겨져 일본 것임을 상징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건물 앞에 두마리 사자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으나 아직도 견고해 보이는 이 건물은 당시 일본의 위세를 반증해 주는 듯이 보였다. 화룡현 용정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보다 커 보였다. 일본인들은 명치 초기부터 블라지보스또크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876년에는 일본정부의 무역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880년대 이후에는 나가사키간의 정기 항로의 개설에 따라 일본인 거류민 수도 증가하여, 20세기 초에는 약 3천명을 헤아렸다. 러일전쟁의 발발로 대부분은 철수하였으나 전후 곧 복귀했다. 무역사무소는 1907년에, 그리고 1909년에는 총영사관으로 승격했다.
영사관 건물의 반대편에는 조선사범대학 건물이 있었다. 이 대학은 1930년 초에 건립된 대학으로 당시로서는 해외에서 하나 밖에 없는 조선인 대학이었다. 건물은 청회색의 외벽으로 구조된 3층 건물로 현재 연해주 파제예프(ܤܴܰܵܵܲ) 도서관겸 노동자동맹 연해주 지방위원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파제예프는 볼세비키 혁명기 및 소비에뜨 정권 초기 활약했던 러시아의 문호이다. 주소는 대양거리 18번지였다. 과거에는 뒷편으로 공터가 있었으며, 뒤에 문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는 앞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으며, 뒤에 공터도 없었다.
광장에는 러시아 국내전쟁 승리기념물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는 금각만이 보였다. 이곳에는 수많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일반 여객선도 군용선박들도 다수 보였다. 송옹에 따르면 한국의 청진, 부산, 그 밖에 외국으로 가는 많은 배들이 이곳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특히 금각만 옆, 레닌거리에 있는 2차세계 대전 중 사용하던 잠수함과 2차대전시 전사한 장병들을 기념하는 기념탑 앞에 있는 부두에서는 스라비얀카(ܡܻܰܲݏܽܺܰ) 등 연안지역으로 출발하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외국으로 가는 배는 블라지보스또크 역사 바로 뒤에 있는 국제여객선 부두에서 승선한다고 일러주었다. 또한 이곳 금각만으로 들어오는 배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우측에 보이는 독수리산과 좌측에 보이는 범산(虎山)을 바라보고 이곳이 블라디보스톡인줄 알고 들어 왔다고 한다.
광장에서 차로 약 5분 정도 가니 블라지보스또크 역사가 나타났다. 이 역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이다. 고색 창연한 2층 정도 되어 보이는 역사였다. 시계는 16시 43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역사 맞은 편에는 레닌의 동상이 서 있었다. 역에는 수많은 러시아인들 틈에 중국인들이 종종 보였다. 역사 옆에는 외국으로 가는 여객터미널이 있었다. 여행객들과 많은 해군들의 모습이 보였다. 해군 사병들 가운데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이들도 보였다. 이곳의 경우 대학시험에 불합격 할 경우 17세가 되면 군대에 입대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다시 호텔로 향하였다. 차는 고려거리로 향하였다. 이곳의 현재의 명칭은 빠그라니치나야(ܟܾܸܳ݀ܰܽ݇ܽܰݏ)였다. 바로 이거리가 한인들이 처음 이주하여 거처했던 개척리 마을이었다. 이곳은 1873년 군항의 개척과 병행하여 이루어진 곳으로 블라지보스또크 시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 거리에 바로 해조신문사와 대동공보사 등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거리를 헤메며 항일의지를 불태웠던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그런데 러시아 당국이 1911년 봄에 돌연 ぢ호열자의 근절っ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강제로 철거시키고 러시아 기병단의 병영지로 삼았다. 그리고 한인촌은 러시아 당국이 지정한 시의 서북편 변두리인 개척리에서 북쪽으로 언덕을 넘어 5丁 가량되는 곳으로 옮기게 하였다.
고려거리를 지나 호텔에 도착하기 조금전에 아무르만에 접해있는 지역이 있었다. 이곳이 한국인이 최초로 정착한 둔덕마투아(마투아는 중국어로 조그마한 항구라는 뜻)임)였다. 그리고 그 위에 바로 두번째로 거주했다는 운덩마투아가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곳 외에도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는 여러 곳에 있었던 듯하다. 가르스거리(블라지보스또크서남단 호산포대 밑에 흑룡강을 내려다 보는 마치와야라는 곳), 레닌거리(대안 지루양이라는곳), 마르스거리, 슬라보드카(ܡܻܾܱܾܴܺܰ 블라디보스톡의 동쪽 끝) 등이 그곳들이다.
우리 일행은 저녁 6시 50분발 하바로브스크행 기차를 타고 다음날 27일 오전 8시 30분경 하바로브스크에 도착하였다. 무려 14시간이나 소요되었다. 거리는 760Km였다. 블라지보스또크에서 하바로브스크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데 이곳으로의 비행기 역시 기름 사정으로 다니지 않았다.
하바로브스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러시아 비행기 편으로 당일 서울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