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학계의 민족운동사연구 동향


1. 서언

1945년 해방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대내외적으로 큰 변동기를 거쳤다. 대내적으로는 해방,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쿠테타, 12.12사태, 광주민주화운동, 경제적 위기 등이, 그리고 대외적인 사건으로는 김일성의 사망, 동구권과 소련의 몰락, 공산권과의 수교 등이 그 대표적인 사건들일 것이다. 특히 이 가운데 한국전쟁,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공산권의 몰락은 한국민족운동사 서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전쟁이후에는 민족운동사의 연구범위와 평가기준이 냉전논리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경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현재까지 지속화되고 있다. 4.19혁명이후에는 민족의식과 통일의식이 크게 고양되면서 민족주의사관이 역사학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군사정권의 성립으로 그 지향점이 근대화논리와 안보논리에 의하여 제약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후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변혁주체로서 민중이 강조되는 한편 역사학의 과학성, 그리고 학문적 또는 학자들의 실천성이 강조되면서 새로운 경향의 학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또한 반미의식이 강화되면서 냉전의 논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자생적 사회주의 경향이 나타나게 되고 혁명과 반혁명의 구도속에서 입장 및 동지적 결속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남북분단외에 국내에서도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학자들간에 한 때 서먹한 분위기들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민주화의 가시적 성과들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논리나 이론보다는 사실을, 동지적 결속보다는 개인주의가, 정치사· 경제사보다는 생활사· 문화사 등 비정치적이고 탈이념적인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학계에서도 1980년대에 대한 자체 반성과 더불어 기존의 근대화 논리에 대한 비판 등 새로운 방향성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일면에서는 식민지근대화론 등 1990년대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움직임도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는 한국역사학계가 새로운 방법론과 역사상을 정립해야 될 위기와 혼돈의 시대이며,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힘겨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지난 50년동안 격동의 세월속에서 한국민족운동사 연구경향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연구동향은 별고로 하기로 하고 본고에서는 연구동향, 민족운동의 주도론, 연구방법론 등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경향성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이 작업은 해방이후 전체적인 연구 동향 파악과 아울러 21세기 한국민족운동사 연구의 나아갈 방향 제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 해방후 민족운동사연구동향

1945년 해방이후 식민지시대 민족운동사에 대한 연구는 해방후 각 정치세력의 정통성확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당시 우파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였으며, 좌파에서는 노동운동, 농민운동, 조선공산당을 강조하면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및 임시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에서의 연구는 냉전논리에 큰 영향을 받게 되면서 우익이념이 강조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1950년대에 이루어진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실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독립단, 참의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김승학이 저술한 {한국독립사}(애국동지원호회, 1956)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운동을 직접 전개한 당사자가 서술한 책으로서 일제의 자료에 보이지 않는 항일운동의 생동적인 내용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김승학의 후손에 따르면 김승학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하여 많은 애국지사들을 만났으며, 그들과의 대담속에서 많은 자료를 습득, 나름대로 한국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 대하여 소상히 기록한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료의 제한과 시대적 제약 등으로 인하여 본서에서는 국내운동은 사건별로 간단히 서술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운동은 모두 제외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1960년대 연구로서 주목되는 것으로는 조지훈의 [한국민족운동사]({한국문화사대계},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1964)를 들 수 있다. 그의 연구는 냉전시대라는 시대적 제약을 넘어 민족운동사 연구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즉 씨는 당시의 일반적 연구태도와는 달리 사회주의운동을 민족운동의 범주에 넣어 해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인식은 계승 발전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편협한 민족주의 양상이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일찍부터 독립운동사에 대한 자료집을 발간하여 학계에 크게 기여하였다. 즉, 1960년대에 {한국독립운동사}를 1권에서 5권까지 간행하여 일제측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독립운동의 전체상을 살펴보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 이후에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계속 자료집을 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민족운동사 발전에 기여하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냉전의 시기라는 시대적 제한이 있어 어쩔 수 었는 일이었긴하지만 우파 중심으로 자료가 주로 설정되어 민족운동사의 전체상을 밝히는데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큰 진전은 1969년 4월에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구성되고부터 이루어졌다. 물론 현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당시로서 그만한 한국민족운동사관련 저작과 자료집이 나온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한다. 특히 편찬위원회의 구성상 이강훈, 이화익, 박기성, 박영준, 장호강 등 독립운동계에서 활동한 인물들과 추헌수, 최영희 등 전문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운동사를 서술한 점은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자료집 간행에 있어서도 일본측 자료뿐만 아니라 운동당사자들의 자료도 발굴하여 수록하고 있는 점 역시 주목된다.

이 책은 1969년 제1권 의병항쟁사부터 제2, 3권 3.1운동사, 제4권 임정사, 제5 6권 독립군전투사, 제7권 의열투쟁사, 제8권 민족문화사, 제9권 학생독립운동사, 제10권 대중투쟁사 등을 간행하였으며, 관련 자료들 또한 14권을 간행하였다. 이 책의 간행 구성을 통하여 통하여 볼 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는 의병,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만주와 중국관내의 무장투쟁, 의열투쟁, 민족문화, 학생운동, 대중 투쟁 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노동 ·농민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에 대하여는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은 당시 냉전논리하에서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한다. 아울러 당시 이 책의 편집에 참여한 이강훈, 박기성 등 아나키스트들은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시대적 한계로 자신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1960년 4·19 혁명이후 통일 및 민족의식이 고양된 가운데 학계에서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민족운동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다. 그 결과 1960,70년대에는 자료의 입수 등이 어려운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학자들에 의하여 개척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점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들 초창기 학자들은 바로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이후를 거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던 민족운동사를 저항적 민족주의 차원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활성화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 독립운동사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들이 실증적으로 다수 밝혀지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독립운동사 연구를 전개한 1세대 학자들의 공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초창기 연구라는 점, 자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 냉전시대였다는 점 등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즉 심정적 민족주의 의식이 간혹 보이고 있으며, 자료의 제약으로 주제가 다양하거나 또는 특정 주제에 대한 연구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였으며, 우익중심의 연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정책보다는 독립운동사에 초점을 맞춘 개괄적인 연구성과와 자료정리에 박차를 가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보다 냉정하기 보다는 독립된지 얼마 안되었던 시대적 분위시속에서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경향성을 띠기도 하였다. 이것은 독립운동사 연구의 첫단계의 특징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초창기라는 한계를 무시하고 일부 역사학자들이 기존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않거나 도외시 하는 경우도 연구자로서의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민중중심의 민족운동사 연구가 대두하였다. 또한 목적지향적 학술운동 차원의 민족운동사 서술, 사회주의운동 중심 또는 노동자, 농민 중심의 역사서술, 그리고 과학성과 실천성을 강조하는 입장의 역사학이 대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동학과 3.1운동, 사회주의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의 역사서술에서 그러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지금까지 기존학계에서 등한시했던 사회주의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하여 민족운동사의 전체상을 복원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역사학의 대중화와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에 대하여 검토의 여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즉, 민족운동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들은 실천성과 과학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실천성'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학자들 마다 견해를 달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적 역사를 강조함에 있어서 과학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내용이 맑스주의에 입각한 역사라고 한다면 그 역사적 성취는 크게 이루지 못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성이란 사회구성체론 등을 통한 역사학의 서술인가. 그 점 역시 이론적 차원에서 머문감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 역사학자들은 1980-90년대에 있어서 민족운동사의 영역 확대와 실천성에 있어서는 일정한 공헌을 하였지만 과학적 역사학의 발전에 있어서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1980년대에 등장한 역사학자들은 기존 역사학계의 학문적 성과를 비과학적 연구로서 평가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젊은 학자들에 의해 기성세대의 연구성과들이 매도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존의 학문적 성과를 꼼꼼히 살펴본다면 연구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사학계가 1980년대 후반에 많은 성과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1960-80년대의 연구성과를 검토해야 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중국측, 러시아측 자료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이 많이 밝혀졌지만 기존의 사실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음은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이점은 연구방법론에 있어서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새로운 연구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고뇌 또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1980년대에 기성 학자들은 1980-90년대 현실적 문제에 비록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천성의 문제를 현장에서 보다는 학문적 연구를 통하여 이룩하고자 하였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시대정신에 얼마나 투철했는가는 앞으로의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동구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는 한국민족운동사 연구방향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면서 학술운동단체들도 그 지향성을 다양화하고 있다.

21세기에 한국민족운동사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입장에서 역사서술을 보다 활발히 전개하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사회주의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연구도 보다 활성화되어야 민족운동사 연구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적 분석틀로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히고 올바른 역사평가가 이루어질 때 우리역사학, 특히 민족운동사 연구가 크게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학계에서는 활발한 의견교류를 통하여 국내에서의 '분단성'을 극복하고 개방된 역사학, 통일지향의 역사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족운동사연구의 범위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일제의 지배정책, 국제관계, 식민지지배를 받았던 다른 국가들과의 운동사 비교 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전개하여 세계사라는 전체적인 구도속에서 민족운동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민족운동사를 식민지시대에 국한시키지 말고 해방이후사와의 연결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즉, 21세기 한국민족운동사연구는 탈이념적, 개방적, 통일지향적, 비교사적 시각에서 인접학문들과의 끊임없는 교류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3. 민족운동의 주도론

1) 우익주도론

우익주도론은 일제하 민족운동과정에서 우익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강조함과 더불어 우익운동에 정통성을 주는 것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이에 근거하여 학계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였으며, 3·1운동시 민족지도자의 역할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하였다. 아울러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 등 만주에서 민족주의계열에서 거둔 승리와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의 활동 등이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또한 우익계인사에 대한 연구가 다량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해방이후 민족운동사연구에서 특별히 강조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이다.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수립된 임시정부가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계속 투쟁하여 왔고,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유일한 대변자로 활약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대한민국 건국이후 정설화되었으며, 1980년대 전반기까지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로서 주창되어 왔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는 이현희, 신재홍, 이연복에 의하여 체계화되었다. 이어 한시준은 광복군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단행본화 하였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한국사론}10(국사편찬위원회, 1981)에 임시정부를 특집화하여 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국가보훈처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관련 학술회의 개최 지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열 유해봉환 등을 퉁하여 임정의 법통성을 재확인하였다. 특히 최근에는 1993년 이후 정부에서 추진해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재조명과 관련된 전 사업과정을 자료로서 재정리 편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재조명}(국가보훈처, 1997)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정부 법통론은 1980년대 중반이후 일부 학자들에 의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는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진행과 더불어 역사연구가 민주화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할과 활동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신춘식은 역사비평 1988년 봄호의 독자논단에 실린 {상해임시정부 인식에 문제있다}는 글의 머리말에서 당시의 한국적 현실과 관련하여 정부와 민정당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는 뜻에서 문제제기 차원에서 임정에 대한 기존의 평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노경채도 임시정부의 역할과 활동을 비판적인 안목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임정에 대한 객관적 평가마저 정치적 판단에 의하여 제약되었다고 보며, 남한에서의 민족운동사연구는 처음부터 임정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임정에 대한 평가도 한결같이 "임정은 3.1운동으로 표출된 자주 독립의 의지가 결집되어 수립되었고 독립운동의 총영도기관 또는 대표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했기 때문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지닌다"는 식의 평가가 공식적인 것으로 굳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임정의 운동노선과 구체적 활동도 실천적 관점에서 다시 검토 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렀다고 전제하였다. 그는 그의 글에서,

임정은 독립운동의 영도기관으로 수립되기는 했지만, 운동세력의 범위활동 등에서 많은 한계를 지닌 하나의 독립운동단체에 불과하였다. 더욱이 임정의 인적구성, 이념 등을 계승하지 못한 정치세력들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임정법통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라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신춘식과 노경채의 임시정부에 대한 견해를 전후하여 역사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임시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서서 임정에 대하여 논급하였고, 실제 논급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좀더 비중을 두어 민족운동사를 서술하였다.

이러한 임시정부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특별한 논쟁이 없이 일단락되고 말았다. 물론 조동걸이 양자의 입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임시정부를 역할가치와 발생가치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으나 역할가치의 입장에서 임시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인 평가에 좌우됨이 없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논쟁이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과정을 통해서 임시정부의 위상이 보다 객관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임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 역시 자신의 논리에 따른 평가이지 객관적인 사실과 논리에 바탕을 둔 면이 약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편 우익주도론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정통론만을 주장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학계에서는 임시정부에 정통성을 주면서도 일제하 민족운동을 임정을 포함하여 국내 및 해외에서 활동한 우익세력들에 의하여 주도되었음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즉 3.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1920년 만주지역에서 전개된 봉오통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독립군이 대대적인 전과를 올렸음이 주목되었다. 그리고 김좌진의 항일역량이 높이 평가되었다. 아울러 최근에는 중국지역의 정당운동과 러시아지역에서의 민족주의운동이 크게 주목되었다.

이처럼 해방이후 지금까지 남한 학계에서는 우익주도론에 입각하여 다수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도 많다. 국내의 민족주의운동, 우익세력에 의한 노동, 농민운동 및 대중운동, 러시아 및 일본, 미국지역의 민족주의 운동 등이 그 분야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이들 분야에 대한 연구도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우익주도론은 해방이후 민족의 분단과 세계적인 냉전논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21세기 통일을 지향하는 시점에서 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민족운동사 전체속에서 그 위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 사회주의운동 주도론

해방후 북한에서는 항일무장투쟁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해방 3년동안에 남한에서 활동한 진보적인 세력들은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의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일제치하에서 가장 많은 고통을 겪고 가장 많이 투쟁한 계급은 국내에 있던 노동자 농민이었기 때문에, 이들 국내 세력을 중심으로 하고 해외 혁명단체를 망라하여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6.25전쟁 등으로 남한 내에서 냉전논리가 더욱 강화되면서 금기시되었다. 특히 공산주의운동은 민족운동사와는 별개로 파악되어 민족운동사의 전체적인 과정으로 파악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학계에 새로운 경향이 대두하였다. 즉 공산주의운동도 민족운동의 하나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운동, 농민운동, 당운동 등이 연구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1980년대 한국에 있어서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학자들도 민주화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실천적인 자세에서 일제하 한인민족운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복원운동을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이들은 일제하 맑스-레닌주의자들의 실천운동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즉 새로운 경향의 학자들은 사회주의 세력이 민족운동을 주도했다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이점은 {민족해방운동사 쟁점과 과제}(역사비평사, 1990) [사회주의 계열의 이념과 활동]에,

사회주의운동 세력은 일제하에서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운동을 지도한 세력이었으며, 나아가 광범한 반제국주의적 운동세력을 통일전선의 형태로 결집하여 민족해방운동을 단결시키고 고양시키는 데 중심이 된 세력이기도 하였다

라고 있는데서도 짐작할 수 있고, 또한 {일제하사회주의운동사}(한길사, 1991, 19면)에서 식민지 민중해방운동의 주체는 노동자계급을 핵심으로 한 농민 등 식민지피압박민중임을 강조하고 아울러 민족해방운동 내부에 지배적으로 관철되었던 사상과 노선은 사회주의 사상과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변혁노선이었다고 주장한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 주도론의 입장에서 민족운동사의 서술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일제하사회주의운동사}는 1930년대의 국내공산주의운동, 그 가운데서도 당재건운동, 그리고 그것과 밀접한 관련하에서 전개된 국내의 혁명적 대중조직운동과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다양한 성과 등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한인사회당과 고려공산당, 노동운동, 농민운동, 청년운동, 1930년대 당재건운동, 1930년대 항일반만유격운동, 중국관내의 사회운동에 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운동만이 일제하 민족운동을 끌어온 것 같이 서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제하 민족운동은 우익 또는 사회주의계열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운동과정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보다 객관적 검토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또한 코민테른 테제가 사회주의 운동에 이른바 지침으로 일정한 영향을 주었음에는 분명하지만 코민테른 테제와 더불어서 코민테른 및 소련의 조선민족운동에 대한 정책변화, 방향 등이 우리 민족운동에 미친 영향 등을 보다 객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민중사학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정치경제학적 전통이나 맑스주의적 학문전통을 중요시하여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는 운동노선의 변화를 초래하고, 운동노선의 변화에 따라 운동의 전개양상이 변화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민족운동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인 배경이 바탕이 되어 단체의 운동 경향이나 방법이 결정되는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제주의적 시각은 1980년대 민중성이 강조되면서 이들의 삶의 토대가 되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강조되면서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채로 서론다음에 객관적 조건으로서 사회경제적 배경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사회주의운동주도론을 주장하면서도 연구 태도 및 방법론 등에서 자체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동춘은 그의 저서 {한국 사회과학의 새로운 모색} 중 [민족해방운동사 연구의 전진을 위하여]에서,

운동사연구에서는 '사실'보다는 '입장'이 과도하게 강조되기가 십상인데,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식민지하 민족해방운동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킬 수 있는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충실함을 구실로 우리 운동사에 대한 연구자들의 실천적 문제의식이 희석되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통상 실천적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 연구자들이 마치 특정적 정치적 입장의 어느 한편에 서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매우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라고 하여 실천적 문제의식을 견지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입장의 지나친 강조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3) 통일전선운동주도론

지금까지 살펴본 우익주도론과 사회주의운동 주도론의 좌우편향을 극복하고 통일전선운동주도론에 착목하려는 입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강만길을 들 수 있다. 강만길은 1978년 그의 논문 <독립운동의 역사적 성격>과 1982년에 앞의 논문의 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운동과정의 민족국가건설론>을 통해서 통일전선론 및 통일전선운동을 강조하였다. 특히 씨는 <독립운동과정의 민족국가건설론>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민족주의의 일차적인 목적은 주권의 회복에 있었지만, 어떤 주권을 회복하려 한 민족주의였는가 하는 물음에까지 나아가는 경우 대체로 다음과 같은 해답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3.1운동이후 임시정부가 성립된 시기까지는 군주주권체제를 청산하고 국민주권체제를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지향했다. 이후 좌우익의 대립으로 혼선과 대립을 빚다가 식민지시대 말기로 접어든 1930년대 후반기 이후에는 만주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은 그것이 지향한 정체(政體)를 분명히 밝힐 수는 없지만, '부르즈와' 계급과 종교단체와의 협력을 모색한, 적어도 '노동계급 독재'는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한편 중국지방 독립운동전선에서는 '조선독립동맹'의 좌파노선과 임시정부 중심의 우파노선이 모두 정체는 보통·비밀 선거를 통한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지향하고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한 일종의 민주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시대 말기 좌우익 독립운동전선의 민족국가건설론을 통해 본 이와 같은 민족주의적 합일점에의 접근은 그것이 미처 정착되기 전에 일본의 패망이 초래되었던 연합군의 분할점령과 동서냉전의 심화추세 아래서 민족분단은 고정화했다. 이 때문에 분단시대 민족주의의 최대 과제는 그대로 통일민족국가의 수립문제로 남아 있게 되었으며, 그것은 또 식민지시대 말기의 민족주의가 지향한 방향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강만길의 입장은 분단극복사론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었다. 이후 강만길은 이에 실증적 작업을 추진하였으며,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화평사, 1991)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식민지시대 속에서 체계화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씨는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를 살면서 우리역사학의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분단극복사론"을 수립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증작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가져왔다. 앞에서 든 두 논문이 그런 작업을 단편적으로 시도한 것이라면, 이 책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은 그 작업의 식민지시대 부분을 체계화하겠다는 욕심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만길의 통일전선론 및 통일전선운동 지향은 그의 다음과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역시 같은 책 서문에서 강만길은,

80년대 후반기 이후의 우리 역사는 민족의 평화적 주체적 통일을 한층 더 가까이 전망하면서 그 올바른 방법론을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보잘 것 없는 내용으로 분에 넘는 바람이겠지만 이 한권의 책자가, 특히 통일전선론 및 통일전선운동 부분이 그것을 위해 만일이라도 이바지 하는 바가 있다면, 전체 학문생활을 통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라고 하는 표현을 통해 그의 역사인식을 더욱 절실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즉, 강만길은 좌우합작의 사상노선을 민족운동의 지도사상과 노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강만길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민족주의의 가장 큰 과제가 통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민족운동사 연구를 한 단계 발전 시킨 주목할 만한 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승발전되었다. 즉 노경채는 일찍이 이러한 입장에따라 1984년에 씨의 석사 논문 [일제하 독립운동 정당의 성격-민족혁명당과 한국국민당을 중심으로 ]에서 민족혁명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요소가 있었으며, 독립 후 민족국가건설론에서 사회민주주의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씨의 박사학위 논문 {한국독립당} 역시 그와 같은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또한 김기승도 그의 저서 {한국근현대사회사상사연구}에서 민족협동전선운동에 직접 참가한 배성룡의 사례연구를 통하여 강만길이 위에서 언급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실체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강만길의 이러한 입장은 해방이후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여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중석은 그의 저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에서 통일전선을 강조하면서 특히 중도파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도진순도 그의 저서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에서 그러하다. 아울러 최근 들어 중도파라고 불리워줄 수 있는 배성룡, 김원봉, 여운형 등에 대한 연구 등이 활발히 이루어진 것도 통일전선론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신간회, 민족유일당 등에 대한 연구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4. 민족운동사 연구방법론

민족운동사연구의 경우 다양한 연구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학계는 이러한 연구방법론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대체적으로 문헌고증주의에 입각한 이야기체 서술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기승전결의 일반적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최근 젊은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민중에 기반을 둔 역서서술을 하고 있고 실천성, 과학성을 내세우고 있으나 연구 방법론에 있어서 특별한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즉 입장만이 강조되었을 뿐이지 방법론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초보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역사사회학적인 방법과 심성사적 방법론, 그리고 집단전기학적인 방법론을 통한 서술 등이 이채롭다. 21세기에는 역사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보다 관심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 문헌고증학적 방법론

해방이후 분단이 고착하면서 사회경제사적 관점은 학계에서 그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사관과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이 학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은 증거에 근거하여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으로서 역사학의 기본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학자라면 기본적으로 모두 이를 수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민족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역시 여기서 예외가 될순 없다. 즉, 자료에 근거를 두지 않거나 결론을 미리염두에 두거나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서술하는 형태는 지양하였다. 즉 귀납법적 연구 형태를 띠었던 것이다.

민족운동사연구방법론에 있어서 실증적인 태도는 자료에 근거하여 논리성을 강조하고 있고, 아울러 구조적인 틀 보다는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이야기체 형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은 지나치게 자료중심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의 전체적인 틀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이러한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945년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익진영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는 문헌고증학적 방법론에 바탕을 둔 사건이나 인물, 또는 운동 중심의 서술식 연구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대략적이나마 민족운동사의 전체적인 모습이 밝혀지게 되었다. 앞으로도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한 일본 및 러시아지역의 민족운동, 사회주의운동 등 많은 부분들이 이 방법론을 통하여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연구의 개척기에는 우선 객관적 사실들이 알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문헌고증학적 방법에만 집착해서는 물론 안된다고 생각된다. 새로운 방법론의 도입과 다양한 해석의 시도가 역시 더불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우리 학계는 입장을 강조하는 역사학에 몰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문헌고증학적인 방법론의 폐해에 대하여 많은 지적이 있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실사구시적인 연구 경향이 다시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역사학의 기본 토대가 문헌고증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학계는 문헌고증학에 바탕을 두며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역사사회학적 방법론

일제하 민족운동사는 역사사회학적 접근방법론을 시도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보다 심화되었다. 그들은 위로부터의 역사인식에 반대하고 민중의 삶, 경험, 의식, 행위 등에 관심을 두고, 민중이 계급투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그들의 생활상태, 이데오르기 문화 등에 주목하여 접근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연구를 주장하였다.

김경일은 그의 저서 {일제하 노동운동사}(창작과비평사, 1992)를 통하여 1920년대 초 노조의 맹아적 형태뿐만 아니라 서울, 평양, 부산, 대구, 목표 등 대도시에서의 지역별 조직과정, 그리고 노조들의 지역연맹체, 도연맹체, 직업별 노조의 전국연맹체, 노동쟁의의 전개와 노동운동의 이데오르기, 노동조합의 문화와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1920년대 노동운동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연구방법론에 있어서 필자는 일제하 식민지 지배의 최저변에 있던 일반민중, 특히 그 지배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던 노동자를 최대한 반영하고, 역사사회학, 비교사회학적 연구성과들을 적극 수용하여 일제하의 노동운동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특히 영국에서 이루어진 노동운동사연구와 일본에서 실제 논의된 것들을 염두에 두고 식민지시대의 노동운동에 접근하였다. 또한 씨는 {이재유연구}(창작과비평사, 1993)를 통하여 1930년대 지하혁명운동사상 영웅적 기록을 남긴 당대 최고의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재유의 전 생애를 또한 집중적으로 분석하였으며, 그를 당대의 여타 공산주의자와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 인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씨는 이재유가 민족혁명적 관점을 갖고 있는 점, 국내 대중에 기반을 둔 국내주의적 운동을 지향한 점, 오르그에 의한 중앙집중적 하향식 조직방식과는 다른 트로이카 조직론을 독창적으로 창안한 점 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중섭은 형평운동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접근을 통하여 {형평운동연구}(민영사, 1994)를 간행하였다. 씨는 이 저서에서 1920년대 초 진주지역 사회운동의 동향, 형평운동의 형성과정, 그리고 형평운동 지도세력에 대한 분석과 그 변화상, 형평운동의 지향과 전략 등을 면밀히 추적하였다.

이준식은 일제침략기 함경남도의 경우를 중심으로 농촌사회변동과 농민운동을 역사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주목하였다. 씨는 역사적 사건을 단절적으로 파악하지 말고 합법칙적인 발전과정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씨는 1930년대 함경남도 지방에서 전개된 혁명적 농조운동도 1920년대 운동이 거둔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해 그것이 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출현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씨는 객관적인 모순의 존재=운동으로 파악하는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념과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농민운동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박명규는 {한국 근대국가형성과 농민}(문학과지성사, 1997)에서 역사사회학적인 입장에서 농민을 처음부터 근대국가의 건설주체로 설정하고, 동학농민전쟁이 내부의 체제개혁을 통해 대외적인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집합적인 변혁운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인 국가체제를 지향한 운동으로 파악하고 있다.

1990년대의 사화학분야에서 역사학에 기울인 관심은 과거사가 더 이상 역사학만의 점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사회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근현대사를 이론화하고 외국과의 비교사를 통하여 한층 역사학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역사사회학의 유행은 한국의 현실적 요구와도 일치하여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서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강조하였다. 또한 민중운동의 역사사회학은 계급형성에 대한 주체적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곧 객관적 모순의 존재에서 민중운동의 필연성을 찾는 경제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민중의 생활상태, 의식, 이데올로기, 조직과 연대에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 역사학계에서도 사회학의 도움을 통하여 역사의 다양한 해석과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20세기의 한국사학의 특징인 민족과 민중의 문제와 더불어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제공해 준 여러 개념이나 이론의 틀을 통하여 역사학에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4) 집단전기학적 방법론--類型分析

사회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그러나 그 인간은 개인은 아니다. 집단으로서의 인간이 중요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기백이 이 점을 중시하여 줄기차게 주장하여 왔던 터였다. 이기백은 인간잡단 가운데서도 계층을, 그 가운데서도 다시 신분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것은 역사에서의 인간에 대한 그의 이해가 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 더욱 깊어 졌음을 뜻한다.

서양의 경우 이와 관련하여 독특한 위치에 있던 이가 Namier이다. 그의 연구는 잡단전기학으로 특징지어져 그렇게 불리우고 있다. 집단전기학이란 공통된 배경 특성을 가진 행동집단을 그들의 경력에 대한 집단적 연구를 통해 조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출생과 사망, 결혼과 가족, 사회적 出自와 경제적 지위, 주거지와 교육정도, 경제적 부의 크기와 그 원천, 직업과 관직, 종교 등을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단전기학은 정치행동의 합리적 해석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사회구조와 이동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데오르기와 문화의 변동을 현실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전기학이 개인들의 세세한 인적사항들을 모아서 전기를 만들고, 그러한 전기들을 사람이름의 알파벳 순서대로-집단으로-다시 모아서 인명사전을 만드는 것과 같은 수준에 있었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일은 역사가에게는 기초적인 작업일 뿐 연구의 목적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역사가는 전기 작가는 아니다.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개인이 건 집단이건 전기를 짓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자료로서 분석하는 일이다. 이 경우 분석은 말할 나위 없이 유형분석을 뜻한다. 어떠한 계층이건 집단이건 주제의 다름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것을 몇 개의 유형으로 남기고 그 유형과 유형사이의 여러 관계에 주목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국민족운동가들의 정치노선과 활동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론을 이용하여 민족운동에 참여한 구성원의 생몰연대, 신분, 경제적 지위, 출신지, 학력, 이념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이들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구성원의 이념과 운동방향성 등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작업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민족운동사연구 부분에서 집단적기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인물에 주목한 것은 박환의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와 그의 후속 논문들이다. 씨는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 대한국민회, 대한독립단, 신민부, 한국독립당 등 만주지역 주요 독립운동 단체들의 주요 구성원들을 다양한 기준으로 분석하였던 것이다. 즉 단체에서의 직위, 참여단체이전의 활동, 생몰연대, 출신지, 학력, 출신신분, 이념, 향배, 재산 정도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하여 이들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그들의 활동과 앞으로의 향배를 예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씨의 분석은 주요 구성원들의 이합과 집산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많은 문제 또한 내포하고 있다. 우선 분석의 대상이 전부 지도자에 제한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어떤 특정 단체의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도부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전체의 경향성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이다. 아울러 지도층을 모두 양반으로 분류하고 있는 데 이 점 또한 보다 세분화되어야 할 것이다. 양반인가, 향반인가, 서자인가, 적자인가, 당파는 어떠한가, 노론이가, 소론인가, 사상적 경향은 어떠한가, 성리학인가, 양명학인가 등 보다 다양한 분석이 요망된다.

집단전기학적인 방법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은 홍순권에 의해서이다. 씨는 그의 저서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94)에서 호남지역 의병운동의 내부구조와 이념을 검토하여 그 운동의 성격과 한계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의병장들의 신분, 직업, 나이, 그리고 그들의 경제적 처지 등을 분석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그는 지도층 외에 참가층도 분석하였다. 참가층의 경우는 농업종사자, 상업종사자, 임노동층 및 기타 등으로 나누어 참가층의 존재 양태와 사회계층적 성격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의병부대의 지도부의 경우 무명유생과 평민의 참여, 일반참여층의 경우 전계층적 참여와 그 중에서도 빈농, 소상인, 수공업자, 임노동층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적기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한 연구는 일정한 장점과 더불어 단점 역시 보여주고 있다. 즉 집단전기학은 사료와 해석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단편적 자료에 바탕을 둔 연구는 전체의 경향을 과장하기 쉽다. 둘째, 집단전기학은 사회신분이 낮은 경우는 그 사료가 빈약한 법이므로 자연 그 대상이 관리, 장성, 지식인 등 지도부의 자료가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 분류방법에 있어서의 오류를 들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을 어떤 신분범주에다 넣을 것일가 하는 문제, 그 구분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서 그 연구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넷째, 해석에 큰 과오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무시함으로써 일어나는 오류가 있다.

한편 회고록류는 집단적기학의 유용한 토대가 된다. 앞으로도 인물사 연구는 특정 계층과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4) 심성사적 방법론

역사학계는 지금까지 문헌고증학적 방법론과 입장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싸여 사실고증과 민족과 계급, 혁명과 반혁명, 이념 등에 주로 주목한 경향이 강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리같은 섬세한 문제에 대하여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학이 보다 풍부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권희영은 심성사연구에 주목하며서 사고의 틀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씨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아 사고의 틀은 사고의 내용 이상으로 탐구되어야할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권희영의 이러한 심성사적 방법론은 일제시대 민족운동에 참여했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그들의 사고의 틀을 밝히는 작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방법론을 통하여 지금까지 투쟁사 중심이었던 민족운동사가 사상사 분야에서도 보다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결어

지금까지 해방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의 민족운동사연구동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민족운동의 주도론과 방법론에 각별히 주목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민족운동사연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간단히 제시함으로써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진리의 추구가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0세기의 한국에서의 민족운동사 연구는 냉전과 민주화운동의 열기에 의하여 상당히 제약받아 왔다. 그러므로 이념의 논리와 혁명과 반혁명의 논리속에서 역사의 실체에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입장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온 부분이 없지 않다. 또한 심정적 민족주의에 치우친 감도 없지 않다. 앞으로는 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과 관련하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인 연구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진리를 밝히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가에 있어서 실천성은 바로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통일지향의 역사학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운동사주도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민족운동사연구는 우익 및 사회주의운동 주도론이 대세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냉전이라는 세계질서와 남북분단과 민주화운동이라는 대내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내외적인 상황은 상당히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남북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통일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통일은 과거의 구호가 아니라 이제는 남북한이 살아 맘을 수 있는 생존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은 우리에게 과거 어느 때보다 절박한 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학도 통일지향의 관점에서 재정립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셋째,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민족운동사연구 경향은 민족운동사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저항적, 심정적 표현이 많다. 이런 부분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제와 일제의 조선지배정책에 대한 연구가 우선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대만, 만주국에 대한 지베정책에도 많은 관심이 기울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속에서 민족운동사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한국의 민족운동 연구가들은 지나치게 민족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문제를 지나치에 한국에 국한시켜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제국주의 흐름과 특히 동아시아 전체적인 시각속에서 한국민족운동사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연구방법론의 개발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본론에서 본 바와 같이 민족운동사연구방법에 대한 연구는 별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다만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역사사회학적 방법론, 집단전기학적 방법론, 심성학 등이 일부 이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앞으로 연구방법론에 대하여는 보다 깊은 관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섯째, 사회사, 문화사, 생활사 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민족운동사연구는 지금까지 투쟁사부분에 집중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밖에 대외관계사, 사상사 등이 일부 다루어졌다. 그러나 민족운동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이해서는 촌락사, 종교사, 생활사, 토지사, 심성사 등 다양한 부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 부분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듯하다.

일곱째, 학회간의 활발한 교류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근현대사 관련학회로는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연구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등이 있다. 그 밖에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에서도 민족운동사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 이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왔다. 그러나 학회나 연구소 상호간에 긴밀한 교류는 이루어지지 못한 느낌이다. 앞으로는 각자의 입장과 색깔을 견지하는 차원에서 보다 활발한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일관계사연구회, 일본학회 등 일본관련 학회, 동양사연구회, 서양사연구회, 한국사회사연구회 등과의 교류 또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덟째, 한국에서는 역사학과 인접 사회과학과의 교류 및 협력이 부족하였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회과학자들이 역사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역사학자들도 사회과학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사회과학에서의 이론이라는 것이 사변적인 틀의 강요가 아니라 문제를 구조화하는데 기여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면 역사학으로서 사회과학을 거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방법을 고려하여 역사를 구조화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면에서는 가장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아날학파의 역사학이 보여주듯 역사학은 그 방법에 있어서 가장 널리 열려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이 인접학문들로부터 방법들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혹은 그 역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며, 이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전통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법의 차용에 대하여 그리고 그 적용의 타당성에 대하여 좀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아홉째, 자료수집의 체계화를 들 수 있다. 민족운동사연구에 있어서는 자료의 수집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상당히 많은 자료가 아직 미발굴 상태로 남아 있다.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 조차도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있지 못하며, 각 재판소에 일제하 독립운동가들의 재판 기록 역시 제대로 공간되어 있지 않다. 또한 있는 자료 역시 제대로 홍보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한편 국외 자료의 경우 각 정부기관, 각 신문사, 개별 역사학자들 모두 한탕주의에 연연해 하고 있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중 3중의 자료 수집의 경우도 생기고, 또한 외국에서 자료 수집시 단가만 상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부당국에서도 협의회를 조직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전문학자들도 참여하여 문제의 극복과 개선방향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열번째, 외국어자료의 경우, 번역작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해외독립운동관련자료는 일어, 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자료의 일부를 번역, 발간하기도 한다.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산 등의 관계로 자료집의 번역 출간보다는 외국어로된 자료를 그대로 영인하여 발간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점은 학자들에게 보다 빨리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문의 대중화와 학계의 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가 번역 출판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자들은 연구 그 자체보다도 어학공부에 매말릴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