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정부주의 사상의 수용
최갑룡이 동경에서 정칙영어학교를 다닐 무렵인 1926년경은 조선인 무정부주의 운동이 새로운 활동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한국인 무정부주의 운동은 1921년 11월 朴烈, 鄭泰成, 등이 大杉榮, 岩佐作太郞 등의 후원하에 黑濤會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나 이 단체는 1922년 10월 이념상의 차이로 분열하였다. 즉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박열, 申榮雨, 洪鎭裕, 徐相一, 徐東星, 張祥重, 金根鎬 등 10여명은 黑友會를 조직하였으며, 공⧚주의자인 金若水, 金鍾範 등은 北星會를 창립하였던 것이다.
흑우회는 기관지로서 {不逞鮮人}(フテイ鮮人)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불령선인}은 제1,2호를 낸 후 월간 {現社會}란 제목으로 개제하였다. 이⧚럼 일본에서 조선인을 중심으로 한 무정부주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1923년 9월 1일 關東大震災가 발생하였다. 이 진재는 전무후무한 大天災였다. 공식통계만 보아도 사상자 총수가 236,000명, 소실가옥 381,300여호, 피해 액수가 400억엔이었다.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자의 박멸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이른 바 [주의자], [불령조선인]이 불온한 계획을 하고 있다고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가뜩이나 공포 불안에 들떠 있던 민심을 부채질 하였다. 그리하여 동경을 주변으로 그 주변에 살고 있던 조선인 수천명이 살해되었던 것이다. 뿐⧚ 아니라 9월 16일 일본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 대삼영과 그의 부인 伊藤野枝 그리고 그의 어린 생질 등을 헌병대로 끌고가 무참히 학살하였다. 아⧚러 일본 당국은 1923년 9월 1일 명목상 보호감호라는 이유로 박열 등 {不逞社} 동료 전원을 체포하였던 것이다. 당⧚ 박열 사건과 관련된 인물은 모두 16명이며, 그 중 조선인이 11명, 일본인이 6명이었다. 이 가운데 조선인 명단을 보면 박열, 金重漢, 崔圭倧, 陸洪均, 서동성, 정태성, 장상중, 河世明, 韓예相, 徐相庚 등을 들 수 있다. 일제는 이들 가운데 박열, 金子文子, 김중한 등 3명을 제외하고 전원을 예심에서 면소하였다.
이 사건 이후 무정부주의계열의 세력은 급속히 몰락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 동지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고국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서울과 충주 지방을 중심으로 {黑旗聯盟}을 조직한 서상경과 홍진우를 들 수 있다. ⧚리고 대구를 중심으로 {眞友聯盟}을 조직하여 활동한 서동성을 들 수 있다.
한편 일본에 잔류한 정태성, 장상중, 최규종 등 역시 옥외에 있던 동지들과 협력하여 전열의 재정비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26년에는 일본흑색청년연맹에 가입하고, 다시 그것을 계기로 해서 흑우회의 기세를 만회해보고자 하였다. 1926년 12월 10일에는 동지 8명이 참가한 가운데 임시총회를 열고 동지의 규합과 主義의 선전에 대하여 협의한 결과 기관지, 잡지를 발행하기로 하였다. 한편 2월 21일에는 흑색청년연맹 주최의 강연회가 埼玉縣 大宮町에서 개최되자 흑우회의 최규종도 출석하여 과격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고 1926년 5월경에는 {흑색운동사}를 東京府 雜司谷에서 조직하였으며 1926년 12월 12일에는 장상중, 元心昌, 朴芒, 車鼓東, 金建 등이 중심이 되어 박열의 사업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不逞社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최갑룡은 동경 천도교 종리원에서 이홍근과 알게 되었으며, 그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이홍근은 평남 중화군 海鴨面 龍山里 출신으로 진남포 상공학교에서 동맹휴학주도 문제로 퇴학을 당하여 동경으로 유학온 인물이었다. 그는 일찌기 국내에서부터 무정부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 그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진남포는 흑기연맹사건에 관계되었던 韓昞熙, 郭徹, 李昌植 등의 고향이었다. 그⧚므로 그는 일찍부터 사상운동에 관심을 갖었으며, 일본에 건너온 이후에도 무정부주의 단체에서 활발히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근은 바로 1926년에 조선인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색운동사, 불령사 등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다. 뿐⧚ 아니라 그는 불령사가 1927년 2월에 흑풍회로 개칭되자 여기에도 참석하였으며, 1927년 2월에는 장상중 등과 함께 조선자유노동자조합을 조직하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정부주의 선전활동을 전개한 무⧚부주의 이론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므로 그는 흑우회의 기관지인 {흑우}, {소작인} 등의 편집을 실제 담당하였으며, 1929년 10월 1일에는 일본의 무정부주의 운동 신문인 {자유연합신문}에 ぢ해방운동과 민족운동っ 이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최갑룡은 이처럼 활발한 무정부주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홍근과 그리고 동양대학 철학과에 재학 중인 韓源烈과 동거하게 되었다. 따라서 최갑룡이 이홍근으로부터 무정부주의 사상에 관하여 영향을 받았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들 3인은 우선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그들이 처음에 채택한 도서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인 대삼영의 논설집인 {정의를 구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이홍근이 흑우회에서 가져온 책이었다. 대⧚영은 ぢ노동자 자신에 의한 노동자의 해방っ이란 題字아래 1914년에 平民新聞을 창간한 인물로서 현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촉진하는 혁명적 노동자에 의한 계급투쟁을 호소한 인물이었다. 뿐⧚ 아니라 그는 산디칼리즘이라는 무정부공단주의 연구회를 처음으로 발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무⧚보다도 최갑룡은 대삼영이 주장하는 ぢ노동자 자신에 의한 노동자의 해방っ이란 글귀가 노동자 출신인 그의 뇌리에 닦아 왔다. 최갑룡은 아직까지도 이 글귀를 자신의 신념으로서 생각하고 있는 것만보아도 대삼영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큰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갑룡은 대삼영의 {정의를 구하는 마음} 가운데에 있는 글 가운데 특히 [노동운동의 철학] 이란 글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책에서는 아나르코-산디칼리즘의 직접행동이란 의회를 배격하고, 노동자의 단결의 힘으로 총파업, 시위, 퇴업, 공장점거 등의 수단으로 경제 정의를 달성할 것을 주장하였다. 아울러 맑스의 유물론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정치 엘리트의 영도 사상을 배격하고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한다는 자주, 자결, 자유연합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사회사상가 SOREL,GEORGES(1847-1922)의 산디칼리즘의 {폭력론}(1908)을 찬양하였다. SOREL은 맑스, 프르동, 베르그송, 니이체의 영햐을 받아 1908년에 폭력론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 그는 의회에 대하여 맹렬히 비판하면서 폭력의 윤리성을 강조하였으며, 가장 좋은 구체적인 형태로서 동맹파업을 찬양하였다. 최갑룡은 이글을 통하여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라는 자각과 더불어 노동자의 해방정신을 더욱 철저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최갑룡은 1919년 10월 8일자 {노동신문} 창간호에 실린 대삼영의 [노동운동의 정신}이란 논설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삼영은 여기서 노동운동은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단순한 생물적, 경제적 요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적 요구가 아니면 안되고 인간의 해방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ぢ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기 획득운동이요, 결국 인간운동 또는 인격운동이 아니면 안된다っ고 주장하였다. 또한 노동자는 복종의 습성과 노예적 생활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해방운동은 비단 자본가의 질곡으로부터의 해방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지도자의 권위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노동자들 자신의 자발적 의식적 행동이야말로 노동운동의 기초요, 닥쳐올 새로운 사회의 초석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글은 노동자 출신인 최갑룡에게는 더욱 마음속에 자리 잡는 이야기 들이었다.
최갑룡은 이홍근, 한원열 등과의 독서회를 통하여 무정부주의 사상에 공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노동자 출신으로서 어려운 생활을 영위해 왔던 최갑룡에게 있어서 무정부주의 사상은 하나의 복음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독서회에 열중하는 한편 한원열이 갖고 있던 {철학사}, {철학개론} 등 철학공부도 겸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홍근과 한원열과의 동거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홍근은 고학생들이 흔히 하는 낫도, 즉 따뜻한 곳에 콩을 삶아서 두면 김이 나면서 발효하는 것을 새벽에 ぢ낫도っ, ぢ낫도っ하며 팔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홍근은 자신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미지로(目自)에 있는 흑우회 건물로 숙소를 떬겼다.
한편 최갑룡은 이홍근, 한원열 등과 헤어진 후 평양에서 소개받아 알고 있던 동양음악학교 바이올린과 학생 오원석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는 전북 군산 출신의 고학생으로서 관동대지진을 겪은 바 있는 일본에서의 생활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국에서 처와 아들을 오게 하여 미지로역 부근에 큰 집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최갑룡은 그의 후의로 오원석의 집에 동거하게 되었으며, 자연히 내왕하는 길에 흑우회의 이홍근을 더욱 자주 찾게 되었다.
그러나 흑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은 만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흑우회 건물에서 잠만 자고 각기 식사를 해결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고 일어나면 식사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동지를 찾거나 노동자의 반점을 찾아야 했으므로 일찍 헤어진다고 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최갑룡은 이홍근을 자주 방문하였다.
흑우회의 응접실 남쪽 벽에는 박열, 金子文子, 新山初代 등의 사진이, 북쪽벽에는 대삼영, 이등야지 등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국한문으로 여러 가지의 표어들이 붙어 있었다. [자본가와 동일한 적인 공산당 일파를 배격하자], [직업적 운동자를 放逐하고 정치 운동자를 매장하자], [중앙집권주의를 배척하고 자유연합주의를 고창하자], [피정복자의 해방은 그 자신의 힘으로 하자], [중앙주권주의의 공산당을 박멸하자], [賣名的 운동자를 구축하자] 등이 그것이다.
최갑룡은 이홍근의 소개로 흑우회의 중심 인물인 장상중, 이홍근, 朴茫, 정태성, 金鍵, 원심창 등과 교⧚를 갖게 되었다. 그⧚면서 최갑룡은 그들과 무정부주의 사상에 대하여 대화도 하며, 점차 무정부주의 사상을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인 가운데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인 박열에 대하여 흠모하는 마음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번은 이홍근과 함께 동경 市谷 형무소로 박열을 면회가기로 하였다. 그⧚나 박열은 1926년 3월 25일 사형을 언도받았었고, 4월에는 무기로 감형된 후 옥고를 치루고 있었기 때문에 직⧚ 면회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만 박열 [大逆사건]에 연류되었던 金重漢만을 면회할 수 있었다. 김중한은 흑우회 회원이었으며, 평⧚ 龍岡郡 池雲面 출신이었다. 그⧚ 박열사건에 연류되어 징역 3년을 언도받고 복역 중이었다.
이처럼 재일조선인 무정부주의자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최갑룡의 무정부주의 사상은 더욱 확고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최갑룡은 무정부주의 사상에 대하여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런 그였으므로 틈만 있으면 정칙영어학교 근처에 있는 神保町의 고서점을 뒤졌다. 염가의 책이 있나 해서 였다. 그는 이 서점들에서 [노동운동], [흑색청년]과 [소작인]을 탐독하는 한편 [민주사회주の進め](林房椎雄이 발행)라는 신문을 구해 읽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피가 큰 책은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갑룡은 틈만 있으면 이 고서점가를 찾았던 것이다. 하루는 외서 전문점인 마루젠(丸善) 서점에서 에스페란토 소사전과 영문 {상호부조론}을 사기도 하였다. ⧚호부조론(1902)은 크로포트킨의 많은 저서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5편으로 되어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동물계의 상호부조], [蒙昧人의 상호부조], [야만인의 상호부조], [중세도시의 상호부조], [근대사회의 상호부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책에서 크로포트킨은 생물의 진화에 있어서 적어도 경쟁의 원리와 같은 정도로 중요한 협동의 원리가 인간의 사회진화를 촉진하는 데도 유효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최갑룡은 크로포트킨의 또다른 저서 {빵의 약취}와 {田園, 공장, 작업장}(1899)이란 저서 속에 들어 있는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이란 글을 통하여 큰 각성을 받았다. {⧚의 약취}는 모두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장에서는 아나키스트 공동주의, 즉 무정부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크⧚포트킨은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즉 정부없는 공산주의 , 즉 자유인의 공산주의이다. 그것은 인류가 여러 시대를 통해서 추구해온 두개의 이상-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종합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최갑룡은 이글을 통하여 무정부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 자신 또한 무정부공산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전원, 공장, 작업장}에 실려 있는 글 가운데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에 큰 관심을 기울렸다. {전원, 공장, 작업장}은 상호부조론과 함께 크로포트킨의 저서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책이다. 이⧚책은 19세기 말엽에서 제1차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의 세계 산업 발전의 실태를 통계숫자에 의거하여 분석한 경제학 연구이다. 크로포트킨은 여기서 두가지 두드러진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산업의 분산이다. 둘째는 농업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즉 크로포트킨은 인류의 장래는 농업과 공업의 결합,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융합, 종합적 산업과 이를 위한 종합적 교육 등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책은 모두 9장으로 되어 있다. 공업의 분산, 농업의 가능성, 小工業과 工業村落, 두뇌노동과 육체노동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에서는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만족스리 이해할 수 없고 몸을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는 일만 하고 있는 사람은 노동자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관계로 그에 대하여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쌍방이 모두 결국은 전문이외의 일에는 불구자일뿐더러 그 전문의 일에 대하여도 만족할만한 일을 못하게 된다. 크로포트킨은 분업의 결과로서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이 분리된다. 그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이 두가지를 아울러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또한 이 양자를 조화시키는데는 현재의 교육 방법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갑룡은 크로포트킨의 글을 통하여 무정부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의 필요성과 현대 교육제도의 개선과 더불어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의 조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한편 최갑룡은 동경의 중앙에 있는 上野공원에 있는 우에노 도서관도 자주 활용하였다. 우에노 공원에는 국립우에노음악학교, 우에노 미술학교 등이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에는 기숙사가 부설되어 있었다. 도서관은 4층 건물이었다. 소위 특별실은 단독으로 쓸 수 있고, 열람도서는 제한이 없었다. 당시에 듣기로는 일본의 어느 소설가는 이 책의 대부분을 읽었다고 한다. 일반실에는 대부분이 학생들인데 그래도 몇권씩의 사전을 놓고 공부하는 여유를 보였다. 진열장에는 일본에서 간행되는 최신 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간행되는 외국 서적도 지체없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최갑룡은 휴가때나 야간에 이 도서관을 이용하였다. 한번은 수필가로 유명한 有島武郞의 {文章論}을 읽다가 아예 한권을 베끼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최갑룡의 힘으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최갑룡은 이홍근과 함께 무정부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우선 강연회 등지에 참여하여 무정부주의 사상을 고취하였다. 1926년 2월 21일에는 이홍근이 神田 松本亭에서 개최된 동경인쇄공조합대회에 출석해서 활동하자 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고 3월 29일에는 흑색청년연맹 후원하에 {조선문제연구회}가 개최되었다. 500명이 모였으며, 연사로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인 암좌작태랑, 近藤憲二와 八太舟三 등이 활약하였으며, 기타 武良二, 平野小劍, 望月桂 등도 참여하였다. 연사들은 조선문제의 해결은 정치적, 교육적 종교적으로는 절대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최⧚룡은 이와같은 강연회를 다니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공고히 하였다. 뿐⧚ 아니라 흑우회에서 1926년 7월에 기관지로서 [黑友]와 팜풀렛 [소작쟁의]를 발행하자 이⧚ 읽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를 선전 고취하는 것으로서 발매금지를 당했다.
한편 최갑룡은 메이데이 투쟁에도 참여하고자 하였다. 1926년 5월 1일 이홍근과 함께 메이데이 투쟁에 참여하기로 하고 三田 근처에 있는 增上寺라는 절에서 만나기로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집회가 미다경찰서 부근에서 개최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멀리보니 그가 화물차를 타고 가는 것이 보였다. 최갑룡은 무작정 그를 보고 그 화물차에 뛰어 올랐다. 알고보니 그차는 경찰의 예비 검속차량으로 곧장 미다 경찰서로 직행했다. 경찰들은 우리 일행을 유도장에 강금하였다. 유도장에는 이미 많은 검속자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일이 어이없게 되고 말았다. 결국 최갑룡과 이홍근은 시위행렬이 경찰유치장을 지나 우에다 공원에서 해산된 뒤에야 석방될 수 있었다. 최갑룡의 사회운동의 제1보는 실패작이었다.
최갑룡의 일본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는 생활이었다. 아무리 고학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생활비를 집에서 보조받아야 했다. 그러나 가정 형편상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입장에서는 고학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동경에서 실업자구제사업으로 하는 수도공사에 참여하였다. 시에서는 매일 일정한 인원만을 선택했으므로 최갑룡은 아침 일찍 2km 이상이나 걸어야 했다. 하루 일당은 겨우 기근을 면할 수 있는 임금인 3원이었다. 이 돈으로 빵과 설탕을 사서 발라먹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이것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한 때는 음악학교에 다니던 오씨의 부친과 전북 군산에서 정미소를 했다는 사람이 우에노 공원 뒷벽에서 소규모 미곡상을 경영한다고 하여 오씨의 주선으로 여기에 취직하였다. 소형 도정기를 설치하고 조선쌀 현미를 가져다가 도정하여 일본산 밀을 혼합하여 그들의 기호에 맞게 해서 팔았다. 여기서 최갑룡은 정미도 하고 배달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