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무정부주의 사상의 수용
1. 동경유학
양조회사에서 일하던 중 하루는 일본신문을 보다가 고학생 안내책자를 소개하는 광고를 보았다. 그래서 급히 주문하여 읽어보게 되었고 그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변에 노동자들 뿐이라 고학에 관하여 상의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공장장 김원택의 조카인 盧元祐가 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했다. 노원우는 서울 YMCA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최갑룡은 김원택의 소개로 그를 만나 고학에 대하여 상의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의 여건과 자신의 포부에 대하여도 설명하였다.
그 후 얼마있다가 노원우가 최갑룡을 방문하였다. 그는 北京에 가는 학생들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향이 어떠냐고 물었다. 최갑룡은 그의 질문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운동비로 얼마간의 돈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리고 최갑룡은 중국의 수도 북경에 가서 고학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한없는 기대에 부풀러 있었다. 그는 북경에 가면 비록 서울의 광화문과 경복궁은 가보지 못하였으나 내심 청나라의 자금성과 이화원 등을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노원우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학수 고대했다. 그러나 한동안 그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노원우가 나타났다. 그는 어느 학생의 부모가 경찰에 고발하여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통고하였다. 최갑룡의 실망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최갑룡은 그에게 이왕 고학의 길을 나서겠다고 결심한 것이니 일본 東京쪽을 한번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노원우는 동경에는 아는 친구가 있으니 소개할 수 있다고 흔쾌히 대답하였다. 그의 이름은 崔義淳이며, 서울 YMCA 영어학교를 다녔으며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던 천도교 신자라고 한다. 현재 동경의 小石川區 大塚宮下町에 위치한 천도교 宗理院 東京支部에서 기숙하고 있으며, 고학생이라고 하였다.
최갑룡은 당시 조금은 세상을 알게 되면서 인격의 결정은 학문에 있고, 행복과 불행은 학문의 유무가 좌우한다는 관념이 굳어 있었다. 다음 문제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일이었다. 최갑룡은 어머니에게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배워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일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된다고 어머니를 설득하였다. 어머니는 자식을 고학의 길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몹시 가슴 아파하면서 그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 사장인 주씨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했다.
1924년 11월이었다. 최갑룡은 푼푼히 모은 돈으로 여비를 삼아 일본 동경으로 고학의 길을 떠나야 했다. 부산까지는 기차를, 부산서 일본의 下關까지는 배를 그리고 다시 동경까지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다. 그리고 최갑룡은 노원우로부터 소개장을 받아 최의순을 만나기로 하였다. 하관에 도착하여 도착시간을 알리면 최의순이 동경역에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최의순은 붉은 넥타이를 맨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부산에 도착하여서는 그냥 그곳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고 일가친척들이 모두 부산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들 형제들에게 고향에 대한 말씀을 자주 들려 주셨었다. 그리고 더구나 부산에는 친외가가 있었다. 부산역에 내려 좌천동에 있는 이모댁을 찾았다. 이모님은 한번 겸이포에 오신 적이 있어 더구나 찾아뵈야 했다.
이모는 최갑룡을 데리고 이집 저집의 일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게 하였다. 특히 그녀는 東萊에는 작은 아버지가 계시다고 하며 그 댁을 방문하도록 하였다. 작은 아버지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닯았다. 생전의 부친을 만나뵙는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작은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조그마한 초가집에 작은어머니와 두딸과 궁색하게 살고 계셨다. 그 정경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팠다. 하룻밤 묵지도 않고 나오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 고학비 중 얼마간을 떼어 손에 쥐어드리니 끝내 받지 않으셨다. 여비에 보태라는 것이다.
1924년 11월 어느날 밤 부산에서 關釜연락선을 타고 8시간 후인 새벽녁에 하관에 도착하였다. ⧚당시 부산에서 하관까지의 연락선은 자주 있었다. 1년에(1924년) 1,019번 있었으니 하루에 거의 3번 있는 꼴이었다. 배는 1등, 2등, 3등실로 되어 있었는데 ⧚갑룡은 3등석에 탔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그러하였다. 약속대로 동경에 있는 최의순에게 전보로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렸다. 저녁에 동경역에 도착하여 붉은 넥타이 맨 청년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와 만나 인력거를 타고 궁성 연못을 돌아 천도교 종리원 동경지부에 여장을 풀었다. 천⧚교 종리원은 1922년 2월에 유학생들에 대한 포교 활동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7년 당시의 상황을 보면 동경 종리원에 속하는 신자는 150명이었으며, 주로 평안도 출신들이었다. 그 가운데 世帶主가 7戶, 여자가 11명, 나머지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이었다. 학생들 가운데에는 전문학교 이상자가 37명, 기타 각종학교 재학자가 31명이었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고학생들이었다. 종리원의 주요간부는 주임 宗理師 1명, 종리사 4명 등 모두 5명이었다. 주임 종리사는 朴思稷이었는데 그는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1920년에는 천도교 청년회 총무로서 활동하였다. 1922년에 동경종리원의 설치와 함께 동경으로와 주임종리사가 되었다. 그는 교회를 관리하는 한편 일본대학에 입학하여, 그 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최갑룡은 여기서 평북 성천 출신의 韓源烈과 中和 출신의 李弘根을 처음으로 상면하게 되었다. 그들이 또한 고학을 목적으로 도일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 진남포 상공학교 동창생인데 재학중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들 양인 중 이홍근과의 만남은 앞으로 최갑룡의 장래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성천 출신, 태천 출신들이 있었는 데 그들의 이름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한다.
최갑룡은 언제까지나 이곳 천도교 종리원에 있을 수 없어 고학비로 가져온 돈으로 일본집 2층을 세내어 이홍근, 한원열과 함께 합숙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원열은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최갑룡과 이홍근은 正則英語學校에 입학하였다.정⧚영어학교는 齊藤秀三郞(1866-1929)이 1896년 10월에 동경시 神田區 錦町(현재는 東京都 千代田區 神田錦町) 3丁目 2번지에 설립한 영어교육을 위한 학교였다. 이 학교의 설립자이며 이 학교의 교장인 제등수삼랑은 영어학자로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1915년에는 {齊藤英和中辭典}을 출판하였는데 그 사전은 대단히 유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1904년에는 동경제국대학에도 출강하였다. 이 학교는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학교 건물이 전소되었다. 1924년 1월에는 假校舍를 준공하여 사용하였다. 이⧚건물은 판자로 지은 다락구 집이었다.
최갑룡이 일본에 온 이후 이 학교에 다니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최갑룡은 일단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그리하여 1931년 일제에 투옥되어 감옥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계속 영어를 공부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최갑룡의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므로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했다. 따라서 주야간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학교가 그에게 적합하였던 것이다. 한⧚서 온 많은 고학생들도 최갑룡과 같은 사유로 이 학교에 다닌 경우가 많았다. 당⧚ 정칙영어학교는 오전반과 夜學班이 있었다. 오전반은 다시 예비과(영어입문과), 보통과(1,2,3,4학년), 수험과(고등학교 입학준비) 등으로 나뉘어 졌다. 그리고 야학은 예비과(영어입문), 보통과(1,2,3,4학년), 고등과(고등학교 정도), 문학과(대학정도), 帝大受驗科(제국대학 입학준비) 등이 있었다. 최⧚룡은 예비과에 입학하여 시간나는 대로 오전, 야간 반등에 나아가 공부하였다. ⧚시 교사로는 창립자인 제등삼사랑, 伊藤豊守, 稻原勝治, 山田嚴, 佐川春水, 山崎貞 등이 활동하였다. 학생수는 러일전쟁 전후에는 5천명이 넘었고, 그후 매년 수천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