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평양으로

제철소에서 소년 직공으로 일하는 동안 1차세계대전은 어느덧 1918년말에 끝나고 점차 군수 경기도 퇴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회사에서는 1922년 10월에는 製鋼 작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회⧚에서는 노동자의 수를 감축해야 했으므로 자진해서 사직하면 2개월분의 퇴직금을 가산하여 준다고 퇴직을 권유하는 공고문을 게시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갑룡은 회사의 비인간적인 혹사에 염증이 났던 터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개인적으로 지난번 오산학교 출신 김선배의 말을 마음에 항상 두고 지내던 터였다 그러므로 최갑룡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평양으로 가고자 내심 결심하였다. 그리고 어머니께 이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도 최갑룡의 굳은 결심에 말리지 못하고 그의 평양행을 허락하였다.

1922년 10월 경 최갑룡은 겸이포에서 배를 타고 진남포를 거쳐 평양에 도착하였다. 진남포를 지날 때는 어린 시절 진외가에서 진남포공립보통학교를 다닐 때의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버님만 살아 계셨어도 이 고생은 안할텐테 하면서도 평양으로 가는 마음은 큰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다. 최갑룡은 경제적인 여건상 솔가하여 이주할 입장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일단 혼자의 몸으로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양에 도착한 최갑룡은 우선 평양시 南門里 40번지에서 자전거 점포를 하는 池周善이라고 하는 사람을 쁹았다. 그는 아버지와 동향인 부산사람으로 평양에 오기 전에는 한 때 겸이포에서 철도수리창에서 일하며 우리와 함께 산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자전거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일본 大阪으로 건너가 자전거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 그리고 귀국후 이게(池)라는 간판을 걸고 중심가에 점포를 내었던 것이다. 점포에서는 자전거의 수리는 물론 월부 판매도 하였는데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인정을 받아 점포는 날로 번창하고 있었다.

최갑룡은 지선생이 운영하는 점포에 지선생의 배려로 수리견습공으로 취직하였다. 점포에는 최갑룡 외에 2명의 점원이 더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은 평남 成川이 고향인 사람으로 용접과 조립의 기술자였다. 그들과 그는 점포 2층에서 함께 기숙하였으며, 그들은 기혼자였기 때문에 휴일에는 고향에 다니러 가곤 했다.

이곳에서 2년 동안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 어떤 사람이 지씨를 꾀어 소주 양조에 돈을 투자하게 하였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지씨는 손해만 보게 되었다. 이⧚ 그는 그사람과 손을 끊고 독자적으로 평남 大同郡靑龍面箕林里에 七星釀造會社라는 양조회사를 만들었다. 그⧚고 이를 계기로 자전거 점포도 정리하였으므로 최갑룡 역시 이곳으로 옮겨 앉게 되었다. 최갑룡은 부친과 지씨와의 인연으로 인하여 그로부터 절대 신임을 받았으므로 최선을 다하여 그의 일을 도왔다.

평양에 온 지 1년 뒤인 1923년에 어머니와 동생들을 평양으로 오게 하고 橋口町에 방한칸을 얻어 자리를 잡았다. ⧚해 7월 평양에는 큰 홍수가 있었다. 이번의 홍수는 근년에 보기 드문 대홍수로서 60년 이래, 혹은 수백년내에 보기 드문 홍수라고 하였다. 7월 20일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대동강의 물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8⧚ 2일에는 평양의 유실가옥이 7백호였으며, 平村里는 전멸하였으며, 사망자가 20명이나 되었다. ⧚동강이 넘쳐 고지대인 남문리를 남기고 전시가지가 물에 잠기고 보트로 거리를 내왕하는 참변이 생겼던 것이다. 이때 남문리에는 러시아 혁명으로 피난온 백계 노인들이 경영하는 양복점이 두어군데 있었는데 수해를 요행히 면했다. 혁명후 나진에 상륙한 피남민의 일부인 듯하다.

평양으로 이주한 후 바로 밑에 동생인 호분은 일본인 경영의 기구야 양복점에 견습공으로 입주하였다. 그리고 막내 남동생인 효선은 대동군 기림리에 있는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최갑룡은 처음에는 양조회사에서 판매와 배달을 하였으나 성실하고 조용히 일한 덕분으로 사무일을 보게 되었다. 최갑룡은 양조일에 종사하게 된 이상 이 방면의 지식을 얻으려고 양조학에 관련된 서적을 구하여 읽었다. 그러나 주요 내용이 화학, 식품학 등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요구하고 있었으므로 읽는다고 하여도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평양에 처음 올 때 최갑룡은 이곳에서 공부를 하여 남과 같이 잘 살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생활에 쫓기다 보니 그것은 한갖 꿈이 되고 말았다. 그는 혹 평양시내에 위치한 崇實학교와 光成학교를 지나다가 학생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게 될 때면 그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식을 넓히고자 하였다. 그래서 서울에서 명사가 와 강연회를 할 때면 꼭 참석하고자 하였으며, 山⧚峴 교회에서 전⧚ 음악회등을 할 때에도 자주 가곤 하였다. 하루는 山亭峴 교회에서 미국인 박사가 연설을 하였는 데 그는 국제회의에 참석해보니 거의가 기독교 신자였다고 해 기독교에 마음이 기울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교회의 장로인 曺晩植선생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의 집은 판자로 된 다락구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