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초기 생애
1. 성장 배경
최갑룡은 1904년 5월 29일 釜山府 佐川洞(부산시 동구 좌천동)에서 부친 崔德弘(1876-1917)과 모친 金生麗( -1949) 사이에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첫째 동생인 崔好分은 1908년생이며, 둘째 동생인 崔孝善은 1910년생이다. 그리고 끝으로 여동생이 있었으나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다고 하며 어려서 황해도 兼二浦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최갑룡의 본관은 경주 최씨이다. 그러나 사실 그의 집안은 김해 김씨였다. 그의 증조부때 최씨 집안으로 양자를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가 성씨가 완전히 다른 최씨 집안으로 양자를 들어간 이유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당시는 조선후기이고 또한 여전히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던 시기였으므로 경제적인 해택을 어느 정도 받고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최갑룡이 태어난 1904년은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을 사이에 두고 러일전쟁을 전개한 시기로서,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국을 식민지화 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그는 부산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이다.
가난한 어부였던 최갑룡의 집안은 1876년 개항이후 부산이 일제에 의하여 개항되고 러일전쟁이후 일제가 한국연안의 주요 어장을 독점하게 됨에 따라 ⧚들의 생업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부산에서 살길이 막막했던 부친은 최갑룡의 나이 4세때인 1907년 평남 鎭南浦로 이주의 길을 떠났다. 당시 진남포에는 어느 정도 생활여건이 안정된 부친의 외삼촌 鄭씨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진남포는 부산과 마찬가지로 항구였기 때문에 그의 부친이 이곳으로 이주하는 데는 큰 부담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진남포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시 일본 해군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상인의 왕래, 노무자들의 집중 등으로 큰 시가지를 형성하여 새⧚운 많은 일거리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진남포에 온 부친은 외삼촌과 협의한 후 다시 거주지를 황해도 겸이포(당시에는 하석시라고 함)로 옮겼다. 최갑룡이 살던 겸이포 마을의 북쪽에는 높이 500m가 되는 월봉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20여채의 농가가 있었는데 봄이면 복숭아 꽃이 많이 피어 울타리 역할을 하여 주었다. 옛날에는 범이 많았던지 이곳을 속칭 범박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큰 바위틈에 범이 있는 듯이 보였다. 특히 마을에는 고인돌이 많아 그 위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다 한다.
겸이포는 大同江 左岸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류인 平壤까지는 30리이고, 하류인 진남포까지는 20리이다. 옛날에는 한갓 어촌에 불과하였으나 러일전쟁시 일본육군의 철도용 材陸揚場으로 사용되면서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진남포와는 정기 發動船이 있어 주민의 왕래와 화물의 수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터였다.
부산에서 어업에 종사했던 부친은 배 한척을 어렵사니 마련하여 겸이포와 진남포 사이를 왕래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이리하여 최갑룡의 집안 사정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여건이 어느 정도 호전된 1909년 최갑룡의 나이 6세시, 그의 부친은 그를 위하여 한문 선생님을 모셔다가 한문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겸이포는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었으므로 서당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던 중 1906년 새로이 보통학교령과 동시행규칙이 발표되었다. 이것에 기초해서 황해도에서는 1906년에 海州에 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고 , 1907년에는 黃州에 , 1908년에는 瑞興, 長淵, 沙里院, 載寧 의 4개소에 指定補助사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그⧚고 1912년에는 조선인 교육기관으로서 황해도에 공립학교 19개, 사립학교 1개 등 총 20개의 보통학교가 있었다. 그⧚고 서당도 사립학교로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개량되었다.
최갑룡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는 황주에 개설된 보통학교였다. 그러나 이곳은 겸이포에서 30리 거리였고, 어린 소년인 최갑룡이 통학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거리도 거리였으나 학비가 비싸 부유층 자제들만이 가능하였다. 당⧚ 황해도 소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수업료를 납부하는자, 일부 면제 받는자, 전부 면제 받는 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학교 尋常科의 경우 1달에 가장 많이 내는 경우 0,500원, 가장 적게 내는 경우가 0,100원이었으며 평균이 0,308원이었다. 그⧚에도 불구하고 최갑룡은 남이하니 자신도 덩달아 신학문을 갈망하여 부친께 신식학교에 보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서당에서는 한문을 가르치는 외에 밤이면 야학을 열어 글씨와 일본어도 가르쳤으나 이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최갑룡의 성화에 부친은 외할아버지가 계신 진남포 龍井里로 그를 보내기로 하였다. 그곳에는 외할아버지, 외삼촌 鄭裕善이 어느 정도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갑룡은 그곳에 있는 진남포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학교는 1903년 10월에 설립된 학교로서 진남포 乃谷面에 위치하고 있었다. 8⧚에 입학하여 12살에 졸업하도록 되어 있는 4년제 학교로서 1년을 단축할 수도 있다. 학⧚수는 11학급이었으며, 교원 수는 9명, 아동수는 482명이었다.
최갑룡은 당시 9살(1912)이었는데, 학교에 가보니 어린 소년에서부터 서당의 접장이 있는가 하면 벌써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당⧚의 기록에 따르면 16세 이상의 사람이 가장 많았다. 선⧚은 일본인으로 큰 칼을 차고 있었다. 최⧚룡은 학교에서 修身, 국어(일본어), 조선어와 한문, 산술, 이과, 창가, 체조, 圖畵, 手工, 製縫尺手工, 농업초보, 상업초보 등을 배웠다. 이 가운데 학교에서는 특히 국어인 일본어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하였다. 일⧚는 한국어를 말살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ぢ조선어っ라고 칭하고 ぢ조선어와 한문っ이라는 교과목을 교과과정에 설정하여 한국어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동시에 일본어를 국어라고 명명하고 그 수업 시간수를 증가시켰다. 최⧚룡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좁은 운동장에서 먼지에 뒤범벅이 되며 고무공을 차며 놀았다.
진남포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최갑룡은 매우 우울하였다. 우선 진외가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집에서는 몇달째 학비를 보내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집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하여 내심 걱정도 되고 부모님도 그립고 하여 불현듯 외가집을 뛰쳐 나왔다. 진남포 부두에 나와 겸이포행 배를 쁹았다. 그러나 배는 내일에야 떠난다고 한다. 최갑룡은 그렇다고 하여 다시 진외가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배에서 하루 묶고 겸이포로 돌아왔다.
최갑룡이 돌아온 것을 본 어머니는 매우 놀랐다. 부친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명은 폐병이었다. 어머니는 최갑룡에게 부산말로 니지미라고 하였다. 부친의 병고로 가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부친의 병간호와 영양 보충 등에 정신이 없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캄캄한 앞 길이 열렸다. 최갑룡은 우선 무엇보다도 가정일을 도와야 했다. 동네에서 갓 부화된 병아리를 사다 길렀으며, 신문배달, 일본인 상점 점원, 청과상, 노점 등 가릴 것없이 닥치는대로 했다.
당시 겸이포에는 시장가도 형성되고 일본인 상점도 많이 들어섰다. 일본인 군수재벌인 三菱이 이곳 겸이포에 거대한 제철소를 건설하게 되니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또한 5일장도 개설되었다. 그리고 일본인 경영 야마다 상점이 들어서고 본국에서 가져온 식료품, 일용잡화 등을 취급하였다. 일본인 거리도 생겼다. 한편 한국인들은 영세한 음식점, 포목상, 곡물상, 수리업, 가공업 등을 영위할 뿐이었다.
어린 최갑룡의 머리 위에 지워지지 않는 것은 진남포에서 중국인들이 재배한 야채, 시금치 등을 배편으로 주문해서 5일장에서 파는 것이었다. 진⧚포에는 1882년 대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한 후로부터 개방됨에 따라 청나라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진남포에서 오이, 가지, 홍당무 등을 재배하였다. 그러나 겸이포에는 아직 중국인들의 거주가 없었으며, 야채 농사도 없었다. 이에 진남포에 온 야채는 날개 돗힌 듯 팔려 짭짤한 재미를 본적도 있었다.
한편 어머니는 일본인 목수의 식사를 돕는 한편 콘크리트를 하기 위하여 말뚝을 박는데서 생기는 나무를 불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거두어 오는 일 등을 하였다. 세동생이 있었으니 어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장사를 하면서도 최갑룡은 공부를 계속해야 겠다는 일념하에 기독교계 학교에 나가 공부도 하였다. 학원은 개인 집에다 설치한 것으로 서당과 비숫한 것이었다.